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연루된 26만명의 참여자에 대한 국민들 분노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또 26만명에 해당되는 참여자들이 자신의 흔적을 없애려고 디지털 장의사(온라인 콘텐츠 삭제)를 고용하고, 한편으로 이러한 서비스를 빙자한 새로운 사기도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실제 핵심인 텔레그램은 서버가 해외에 위치하고 있어 국제 수사 공조가 이뤄진다 해도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국내 플랫폼 기업을 당사자로 징벌성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등 민·형사상 의무를 강화하겠다는 계획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차별만 심화하는 꼴이다.
이전부터 온라인 성범죄는 대부분 텀블러, 텔레그램 등 해외 플랫폼 기업들의 서비스를 통해 이뤄졌지만 정부는 그들에 대한 압수수색은커녕 수사 협조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사용한 '드루킹'과 '혜경궁 김씨'의 트위터 계정 사건 등이 대표 사례다. 그동안 국내 플랫폼 기업에만 가혹하게 대해 온 정부 규제가 이번 사건으로 반복되기 전에 먼저 손을 든 셈이다.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n번방 사건의 온상이 된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대응 조치와 관련해 “대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혀 정부 대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 위원장은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n번방 긴급현안 회의에서 “텔레그램의 경우 존재 자체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면서 “수사기관도 서버 위치를 계속 추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혀 여야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도 정부의 시정 요구를 수용해 삭제나 차단을 의무화하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면서도 “현재 가능한 건 해외 사업자의 자율 규제를 적극 독려하는 것”이라고 말해 실질 해결책이 없음을 자인했다.
지난 2018년 11월 하루 간격을 두고 AWS와 KT는 통신 재난을 일으켰다. 당시도 정부 부처들은 AWS의 서버는 조사하지도 못했고, AWS는 피해 기업에 대한 배상도 없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장애 원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사과만 했을 뿐이다.
반면 KT는 아현동 통신구 화재에 대한 소상공인 지원책과 사과 입장을 빠르게 내놓았고, 정부 수사에도 성실하게 협조했다. 외국계 플랫폼 사업자의 눈치만 보고 국내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서는 규제와 쓴소리만 계속하면서 과연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0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살펴보면 ICT, 미디어, 과학기술 등을 다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통위를 관할하는 과방위의 경우 올해는 통신비를 비롯한 AWS·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같은 해외 사업자와 카카오·네이버·NHN 같은 국내 사업자 간 역차별 해소에 집중해서 다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외 사업자 간 형평성 문제는 매년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 사업자의 위반 행위에 대한 집행력 확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자국민과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의 '틱톡'까지 인수하려고 싸우는 미국 정부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김지진 리버티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lawytain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