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가 인식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기관 이름은 기관의 정체성을 인지시키는 데 결정타로 작용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용어와 인식 간 괴리가 큰 곳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 '도서관'이다. 과거의 도서관은 책을 소장하고 읽는 장소를 의미했다. 또 공부하는 장소로 생각했다. '도서관=책=공부'라는 연계를 통해 명예로운 권위의 장소로 여겨진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화했다. '책 없는 도서관'이라는 개념까지 나오고 있다. 또 대학생들은 도서관보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한다. 도서관 성격이 변화하면서 카페가 도서관 기능까지 하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인지 민간에서 '도서관'이라는 용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도서관은 '학술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뿐인가. 대학의 '도서관학과'는 이미 '문헌정보학과'로 바뀌었고, '데이터 사이언스'로 바꾼 학교도 등장했다.
국회도서관 역시 전체 업무의 약 20%만 전통 개념의 도서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도서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국회도서관을 단지 덩치 큰 공공도서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국회도서관의 실제 업무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정보원'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국회 입법 활동에 필요한 객관 자료 및 지식 제공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 업무는 부수로 수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민간에서는 인공지능(AI)을 응용한 기술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진화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진화하지 못하면 퇴출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은 늘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AI 시대를 패러다임 변화로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기관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반면에 AI를 등한시하고 자신들의 영역이 이와 관계없는 특수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안일하게 지낸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AI 시대에 맞게 국회 입법 활동의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 국회에서 모든 활동은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혁신을 선도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입법과 관련된 자료와 지식은 이미 방대하게 국회 관련 기관에 포진돼 있다. 국회도서관도 약 70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고, 정보와 지식이 2억9000만쪽에 서술돼 있다. 그러나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무한한 정보와 지식은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 정보와 지식은 필요한 사람에게 적시 제공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국회도서관의 정보와 지식은 의원들이 필요로 할 때 제공됐다. 또 정기로 발간하는 정보 지식은 모든 국회의원에게 일률 전달됐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이 각자 다르듯이 의원 개개인의 사상과 관심 영역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700만권의 정보가 수동 및 일률 전달되는 것으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국회도서관이 개별 국회의원의 관심 분야에 맞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국회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700만권의 지식 정보는 디지털로 탈바꿈하고 있다. 디지털화 작업은 앞으로 5년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디지털로 탈바꿈된 지식과 정보는 이른바 '빅데이터'가 돼 AI가 작동할 수 있는 주재료가 될 것이다.
국회 입법은 개별 국회의원의 사상과 지식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국회도서관에 있는 모든 장서를 읽거나 본인 관심 외 지식 정보를 찾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 'AI'이다. 국회의원의 사상과 관심 분야는 해당 국회의원이 지금까지 한 수많은 말과 글에 녹아 있다. 이 때문에 AI를 활용한다면 개별 국회의원의 사상과 관심 분야를 핵심 용어 10개 이내로 요약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개별 국회의원의 핵심어를 파악할 수 있을 때 국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지식 정보는 300명의 국회의원에게 '맞춤형 지식정보'로 나눠질 것이다. 현재 필요한 지식 정보는 물론 미래의 지식 정보도 함께 생산되면서 곧바로 해당 국회의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제 국회도서관은 수동의 일률화한 입법정보 서비스에서 능동의 개별화한 입법 정보 제공 기관으로 혁신할 것이다.
현진권 국회도서관장 jkhyun@nane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