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자그마한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언택트(비대면) 문화라는 새로운 생활양식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제한하고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변화의 시대를 가져왔다. 어쩌면 시대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역대 최고로 길었던 장마와 집중호우로 인한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 속에서 더욱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기상이변은 인간 스스로 자초한 바가 크다. 인간의 욕심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더 큰 걱정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하리란 전망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할이 막중하다. 특히 한국화학연구원 어깨가 무겁다. '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자'는 화학연 목표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전염병 퇴치를 비롯해 미세먼지 저감, 썩는 플라스틱, 이산화탄소 활용 등 세계적인 사회문제 해결에는 화학기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반도체, 사물인터넷(IoT), 3D 프린팅, 친환경 전기차·수소차 등의 중심에는 여지없이 첨단 신소재 개발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기에 산업혁명은 곧 '소재혁명'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화학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며, 화학은 인류의 삶의 질 향상과 현대 문명을 이끌어온 소중한 자산이었다. 인간의 의식주 생활이 이어지는 한 화학산업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이 화학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남쪽의 작은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수도로 성장한 이면에는 3대 주력산업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산업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십수 년 전부터 울산은 제조업 기반의 한계를 깨닫고 지식 기반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화학연이 있다.
화학연은 울산에 연구본부를 설립해 화학산업 고도화 및 바이오화학 연구를 주도해왔다. 이를 통해 범용 일변도의 정밀화학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성숙기에 도달한 석유화학산업의 고도화를 꾀하는 것이다.
울산에는 화학연 이외에도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설립돼 연구와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울산의 밝은 미래를 향한 R&D와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인 성과가 지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출연연은 기본적으로 국가사회문제를 해결할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출연연 지역조직은 지자체와 협력해 그 지역 기업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 주요사업 성과만 챙기면 지역조직의 존재 가치가 달라진다. 이에 화학연은 울산시와 공동으로 연구비를 마련해 기술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화학연이 지역 중소기업을 도와 애로기술을 해결하고 나아가 기업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또한 화학연은 지역사회와 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효 봉사에 나서고 있다.
강아지 이름처럼 부르기 쉽게 만든 루피(RUPI·울산 석유화학산업 발전로드맵) 사업은 올해로 10년째를 맞으면서 그동안 많은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국가산단에 널려 있는 노후 지하배관의 안전관리에 정성을 쏟았다. 지하배관 안전진단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통합안전관리센터 및 통합 파이프랙 구축 사업도 국비를 확보해 속도를 내고 있다. 조만간 부곡용연지구에 GPS 발전소와 통합 물 공장이 완성되면 전력과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이런 사업들이 빛을 본 것은 RUPI사업단이 액션플랜을 발굴한 후 화학네트워크포럼을 통해 심층 토론하고 정책을 만들어 널리 알린 덕분이다. 돌아보니 가슴이 뿌듯하다. 화학연 울산본부는 현재 먹거리인 석유화학 및 정밀화학과 함께 미래 먹거리 바이오화학까지 장착한 삼각편대를 꾸려 웅비하고 있다. 감히 화학연 울산본부가 출연연과 지자체의 우수 협력사례라고 자부한다. 이 사례가 지역본부를 두고 있는 타 출연연에도 널리 퍼지길 바란다.
울산은 한국경제의 심장이다. 오늘도 화학연은 화학산업의 수도인 울산과 맞손을 잡고 출연연 지역조직의 자긍심을 지켜나간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RUPI사업단장) dklee@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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