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가 의료기기라는 정부의 뒤늦은 공식 판단에 정보기술(IT)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의료기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관련 인증을 받지 않은 수많은 제품과 제작·판매한 회사는 '불법'의 꼬리표를 달게 됐다. 이미 제조사 가운데 한 곳은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됐다.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체온계'가 아닌 '열화상 카메라' 제품군으로만 인식해 온 업계는 시장과 방역 현장의 대혼란을 막기 위한 정부 조치를 요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중순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를 의료기기로 판단하고 현장 점검을 통해 제조사 가운데 한 곳을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현재도 자체 조사를 통해 체온측정 카메라의 의료기기법 위반 여부를 일제 점검하고 있다. <본지 8월 6일자 1면 기사 참조>
식약처는 '1회에 특정 1명의 체온을 수치로 정확히 측정한다'는 이유로 체온측정 카메라를 의료기기라고 판단했다. 화면에 등장하는 불특정 다수의 체온 상태를 색깔로 표시하는 열화상 카메라는 이 기준에 맞지 않아 의료기기에서 제외했다.
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졸지에 '무허가 의료기기' 제조업체가 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판단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월 이후 적어도 6개월 동안 어떤 조치도 없던 정부는 최근에서야 의료기기법 규정을 들고나오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그 사이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가 우후죽순 퍼져 나가면서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외국산 수입 등을 통해 단순 판매하는 업체만 100여개사에 이르고, 국내에서 개발·생산하는 업체도 10개사 안팎이다. 이 가운데 의료기기 인증을 받은 업체는 1개사에 불과하다.
의료기기 관련 문제를 인식한 업체는 판매를 중단하고 인지하지 못한 업체는 계속 판매하는 등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미 팔린 수많은 제품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거리다. 식약처는 문제가 커지자 9일에서야 참고자료를 배포하고 의료기기로 인증된 체온계를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A 제조사는 유통망에 공문을 보내 “당사 제품이 의료기기 판정을 받아 부득이 판매를 중단한다”면서 “인증을 받은 후 판매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B 제조사는 “당사 제품은 의료용 기기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1차 보안제품”이라면서 “식약처로부터 어떠한 공문이나 의료기기 등록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는 안면인식용 카메라와 적외선 감지 카메라를 탑재해 사용자 얼굴을 인식, 마스크 착용 여부를 판별하고 체온까지 측정한다. 관리 인력이 필요하지 않는 등 발열자 통제가 수월하다는 이유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속히 보급됐다. 공공기관이나 대형쇼핑몰, 극장, 호텔,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됐다.
의료기기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식약처는 안면인식 체온측정 카메라가 특정인의 체온을 수치로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체온계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IT업계는 건물 출입구에서 널리 쓰이는 체온측정 카메라가 어디까지나 '발열탐지 보조기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의료 행위에 사용될 정도로 정밀한 체온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고온 발열자를 쉽게 걸러낼 수 있도록 돕는 데 그치기 때문에 체온계라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한 번에 2명 이상 체온이 측정되는 카메라를 의료기기로 볼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유연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 이후 등장한 생소한 제품이라는 점, 고의성이 없거나 적다는 점,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기여했고 향후에도 필요하다는 점, 이미 너무 많은 제품이 확산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사후인증을 하는 등 최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체온측정 카메라가 널리 퍼졌고, 판매 업체가 많다는 점 등을 식약처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감염병 방역도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신속히 대응 방침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