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시절부터 거의 평생을 국회 안팎에서 보낸 나로서는 늘 우리나라 국회가 언제까지 이런 식의 업무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 다니던 한 대기업만 해도 10여년 전부터 지방과 해외에 흩어진 사무소를 영상으로 연결해 수시로 회의하는 모습을 보았다. 스마트폰으로 중요한 업무를 보는 것도 일상이 됐고, 회사에 자기 자리는 물론 사장실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기도 했다. 그런 풍경이 이젠 세계와 경쟁하는 기업에는 일반화돼 뉴노멀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이상할 정도가 됐다. 코로나19 사태는 비대면, 리모트 워킹을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회의체라는 속성상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1950~1960년대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국회도 이제는 변할 때가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반년이 더 지난 지금도 '한자리에 모이는' 타성을 버리지 못하는 국회라면 '입법부 셧다운' 사태는 수시로 반복될 것이다. 당장 올해 정기국회의 수많은 회의와 국정감사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와 똑같이 수십~수백명의 사람들이 회의실에 북적거리고, 관련 기관에서 온 관계자들이 회의장 주변에 하루 종일 대기할 것인가. 왜 우리 국회의원들은 개인용컴퓨터(PC)를 앞에 두고서도 꼭 종이로 프린트된 자료를 책상 위에 쌓아 놓아야 하고, 왜 회의는 '회의장'에 모여서만 하려 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 국회가 일하는 '방식'에서 시대에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첨단 정보기술(IT)이 인간의 삶과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가고 있는데도 우리 국회와 정당은 그것을 수용하거나 투자할 줄 몰랐다.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이 급해지자 국회는 지난 3일부터 영상회의 전용회의실(웹엑스 플랫폼 기반)을 마련하고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에 설치된 세종정부청사와 구식 영상회의 시스템은 거의 사용조차 없다. 시대 변화의 주동력 IT의 이해·수용·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국회는 갈라파고스섬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것이 국회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도에 적잖게 기여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오랫동안 느끼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정치처럼 변화하지 않는 국회라는 이미지를 쌓아 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회가 이번에 첨단 영상회의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국회 디지털 대혁신'을 선언하고 이를 실현할 추진단을 구성키로 한 것은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이번만큼은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첨단 IT를 과감하게 도입, 국회 전반에 걸친 업무 및 운영 방식을 시대에 걸맞게 바꾸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사무처 및 국회 부속기관, 나아가 정당의 업무 및 소통 방식부터 스마트해져야 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각종 업무 처리, 영상미팅 개설과 참여, 민원인들과의 면담, 웨비나 개최 등 방법을 배워야 한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겠지만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스스로 익숙해져야 할 시대 변화이고 요구다. 법 정비와 정치 합의를 거쳐 국회 내 의사형성 과정(회의, 발언, 출석, 표결 등)에서도 미국이나 호주 등이 이미 청문회 및 본회의 등에 도입한 것처럼 영상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장이 2015년에 출범시킨 믹타 국회의장회의 같은 것도 얼마든지 국제영상회의로 할 수 있고, 의원들의 세미나나 공청회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의회의 모든 시스템에 첨단 IT를 활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절박한 과제임을 인식해야 할 때가 됐다.
세계와 경쟁하고 무역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 같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연구 및 투자를 했다. 국회와 정당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국회의원들부터 첨단 IT 활용에 뒤처져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호통과 위엄으로 권위를 세우던 때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스마트함과 국제 수준의 안목으로 신뢰 및 호평을 쌓아 가야 한다.
국회는 '디지털 대전환'을 선언하면서 앞으로 모든 회의실과 의원실, 각 기관 간을 가상회의실 기반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왕 그런 방향을 잡았다면 국가 최고 보안시설인 국회의 업무가 전 세계에 창궐하고 있는 사이버테러와 해킹에 대비, 최고 보안장치를 갖추고 동시에 외국 의회와 자유롭게 연동되는 호환성도 충분히 고려하길 기대한다. '디지털 국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정보는 접근성과 활용성에서 인공지능(AI)에 이용될 수 있는 데이터로 축적·개방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리 국회가 마침내 변화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았다는 지적은 너무도 정확하다. 물질이 기반으로 작용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국회의 물리 형태 변화는 정치 변화, 국민인식 변화로도 이어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가 앞당긴 초연결·뉴노멀 시대에 우리 국회와 의원들이 대한민국 전체의 디지털 대전환에 앞장서야 한다.
허용범 전 국회도서관장 yb220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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