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수업 시간이 모두 끝난 수요일 오후. 서울 관악구 당곡고 학생 4명은 생명과학실험을 위해 인근 구암고로 향한다. 당곡고는 과학과제연구를, 인근의 또다른 학교 신림고는 스페인어를 개설해 동작관악 내의 학교와 함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른바 '공유캠퍼스'다.
이런 과목을 희망하는 학생은 보통 4~5명. 한 학교에서는 열기 힘든 소인수 과목이지만 지역으로 묶으니 개설 가능한 15~20명이 모인다. 정규교육과정 외에 추가로 듣는 교육과정인 만큼 참여 학생은 의지가 넘친다. 각 과목에 특화된 학교라는 점에서 공유캠퍼스는 더욱 힘을 발휘한다.
참여 학생은 주로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비하는 학생들이다. 당곡고는 봉천동에 위치한 평범한 고등학교지만 일대에서 유명하다. 내신 3~4등급 학생도 이른바 '인서울(서울소재)' 대학교에 척척 붙는다. 학생의 흥미와 관심, 교사의 적극성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학생 재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미래교육에 대한 시도는 현 입시에서도 좋은 성과물을 만들어냈다. 소프트웨어(SW) 중점학교와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등 여러 제도로 학생의 선택지가 넓어진데 따른 것이다.
심중섭 당곡고 교장은 “학생이 수업에 열의를 보이니 교사도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세밀하게 작성해준다”며 “대학에서 우리 학교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보면 일반고 같지 않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 가는 게 즐겁다면 공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며 “학교생활에 참여하면 얻어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수업에 더 집중한다”고 덧붙였다.
올해에는 공동교육과정을 비롯해 지역 협력으로 열기가 더해졌다. 동작관악교육지원청이 관할지역 내 고교와 대학을 연결해 교육과정을 뒷받침한다. 서울대·중앙대·숭실대 등이 인근에 있다. 당곡고는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 1~2학년 학생이 특별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지원청에 요청했다. SW중점학교인만큼 SW 관련된 빅데이터 이용 프로그램에 관한 강의를 희망했다. 대학 교수나 강사,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학교를 방문해 10~12시간 학생을 가르칠 예정이다.
이들 과목은 학생 만족도가 높다. 대학에 대한 동경과 원하는 과목, 새로운 과목에 대한 흥미가 합쳐진 결과다.
3년 동안 이 학교는 서울대 평생교육원과 MOU를 맺고 디자인싱킹을 교육하고 있다. 1학년을 위한 글쓰기·말하기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동작관악교육지원청은 관할 고등학교 수요를 조사해 대학과 연계해준다. '스타트업 경영전략' '나도 보안사고 수사전문가' 등 흥미로운 과목이 신청돼 대학에 강의를 요청했다.
지역 연계 교육프로그램도 활성화됐다. 서울대 평생교육원은 고등학교 맞춤형 진로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청소년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잠재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대 전문인력이 직접 교실로 찾아간다. 중앙대는 산학협력단이 학교 밖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가상공간 디자이너, 코딩으로 배우는 IoT 센서 등 11개 교육과정이다.
대학만 교육자원이 아니다. 이 지역에는 특성화고등학교도 많다. 서울공고, 미림여자정보과학고, 광신방송예술고 등 특성화고는 해당 분야 진로 교육 인프라를 갖췄다.
동작관악은 교육부 고교학점제 선도지구 중 하나다. 지역 내 다양한 기관 간 협업을 통한 학점제형 학사운영 모델 확립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내년에는 정규 시간 안으로 공동교육과정이 들어온다. 그만큼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이 많아지겠지만 정규 시간 내 이동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원격수업이 고민을 해결했다. 1주일에 3시간 중 2시간은 온라인으로 듣고 1시간은 출석수업하는 식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면 이동시간을 최소화해 학생의 선택 폭을 확대할 수 있다.
각 학교는 정규 수업 시간에 교실을 나와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교실을 구축 중이다.
당곡고도 온라인 교실 1실과 교사를 위한 1인 방송실 2개실을 만드는 중이다. 다른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수강 장소도 마련 중이다.
이재효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과장은 “지역 대학뿐만 아니라 지자체나 기관과 연계한 사업도 많이 한다”며 “다양한 주체 간 협력체제로 고교 교육 혁신 모델을 발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공동기획:한국교육개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