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는 세대를 나누는 한 분기점이다. 고등학생 3학년 시절의 어느 하루였다. 학력고사를 얼마 안 남기고 있었다. 갑자기 모의고사가 공지됐다. 모의고사를 치르면 그만이지 싶지만 실상 고민이다. 국어·영어·수학을 한번 정리하고 학력고사에 맞춰 암기 과목을 공부하는 게 누구나의 전략이다. 모의고사를 위해 암기 과목을 뒤적인다면 원래 계획은 흔들린다. 정답은 분명하다. 단지 이 갑작스런 사건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관건인 셈이다.
사건은 경영의 일상이다. 하루하루 경영진의 머리를 썩이게 하는 사건의 연속이다. 팬데믹 탓일까. 요즘 기업 상황은 전쟁터 같다.
그런 만큼 한번 따져 볼 만한 주제가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이벤트 페이싱과 타임 페이싱의 선택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사건에 보조를 맞출 것인지 나만의 계획에 보조를 맞출 것인지이다.
이벤트 페이싱 사례는 흔하다. 코로나19가 만든 팬데믹 경영이 바로 이벤트 페이싱 모습이다. 상황을 고려해서 비즈니스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경쟁 기업이 내놓은 새 제품이나 고객 수요도 사건이다. 분기의 재무 실적이 부진한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기회가 여기에 숨어 있다. 그러나 근본이 수동이자 반응인 것이고, 즉흥이 만드는 실수도 숨어 있기 마련이다.
타임 페이싱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 표현으로는 자기 자신만의 시간표 만들기라고 한다. 계획에 따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고, 전략을 세워서 새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속도를 내자는 얘기는 아니다. 결과는 같을 수 있지만 타임 페이싱에서 말하는 속도란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정속 주행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항공사가 5년마다 서비스 클래스를 갱신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연간 300개를 개장해서 매장 2000개를 오픈하겠다고 한 스타벅스도 이런 류다. 벨기에 영화관 체인 키네폴리스가 지난 1970년 상영관 2개짜리 듀플렉스에서 시작해 1971년 3개짜리 트리오스쿠프, 1975년 5개의 펜타스쿠프, 1981년 10개를 갖춘 데카스쿠프로 진화한 것도 일종의 타임 페이싱이다. 그래서 타임 페이싱은 능동, 규칙, 운율이라는 단어와 걸맞다.
이 타임 페이싱은 쉬운 걸까. 보기처럼 그렇지 않다. 세 가지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나름의 측정 도구다. 기존에 성능검증척도(퍼포먼스 메트릭)를 가지고 있다면 시간관리라는 한 차원을 추가해야 한다. 지난 3년 동안 새로 만든 신제품이 전체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을 측정하는 게 한 예이다.
둘째는 전환 관리다. 어느 비즈니스든 한 사이클에서 다른 사이클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계절마다 신제품을 내놓거나 경기순환 주기로 새 시장 찾기를 한다면 이것이 필요하다. 이음매 없이 전환하는 방법을 좀 더 쉽게 찾는 데 타임 페이싱의 진수가 있다.
셋째는 습관은 걸러내고 비즈니스만의 리듬을 찾아내는 데 있다. 애써 만든 고객 리스트 전체에 2개월에 한 번 안내 광고를 습관처럼 해서는 효과가 없다. 그 대신 고객이 필요할 때를 찾아 계획을 세우는 것은 효과 바꾸는 리듬 찾기에 해당한다.
팝콘 기계는 묘한 혜안을 우리에게 준다. 옥수수 알이 일단 한두 개 터지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펑펑 터진다. 마치 옥수수 한 알 한 알의 연쇄반응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어느 옥수수 알 하나가 터지는 건 전자레인지를 돌린 시간이 된 것이지 다른 옥수수 알을 터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타임 페이싱이 말하는 지혜가 이런 셈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