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카오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빅테크가 내놓은 간편결제에 전통 금융사가 역으로 맞불을 놓았다. 전자 지불결제 시장에 또 한 번 모바일 '쩐의 전쟁' 조짐이 일고 있다.
KB금융그룹이 전통 금융사 가운데 최초로 애플리케이션(앱) 기반 간편결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 카카오, 네이버 등 테크핀 기업 공세에 맞서 역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KB페이 운용사 KB국민카드는 결제 편의성과 확장성을 대폭 강화한 종합 금융플랫폼 KB페이를 출시한다고 15일 밝혔다. 종전 간편결제 플랫폼 대비 강력한 확장성, 보안성, 범용성을 담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는 물론 계좌, 상품권, 포인트 등 카드 이외 결제 수단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빅테크 기업이 내놓은 간편결제 방식을 모두 수용한 것도 강점이다. 삼성페이 마그네틱전송방식(MST), 구글-애플 진영 근거리무선통신(NFC), 텐센트 진영 QR코드, 바코드 등 다양한 결제 방식을 탑재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다.
오프라인 가맹점에서도 플라스틱 실물 카드 수준 결제 편의성을 확보했다. 별도의 앱 추가 설치 없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계좌 간편 송금은 물론 해외 송금, 외화 환전, 멤버십 등 통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전통 금융사의 강점인 여러 금융 서비스를 굴비 엮듯 하나의 플랫폼 안으로 편입한 것이다.
보안성은 대폭 강화했다. 비자카드 등이 사용하는 '토큰' 기술을 활용, 결제 정보 등이 유출되더라도 부정 결제 등을 사전에 차단하는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중장기로는 핀테크나 지불결제 사업자가 KB페이를 통해 간편결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오픈한다. 은행권처럼 오픈뱅킹 형태로 다양한 사업자에게 시스템을 연동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자체 토큰을 만들면 해외 글로벌 카드사 종속에서 탈피하고 KB금융이 보유한 각종 포인트나 결제 내역 수집, 계좌 송금,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앱 결제 등 서비스를 하나의 페이로 집적할 수 있다. 또 클라우드 시스템 적용과 개방형 응용프로그램개발환경(API) 등을 활용, 유연한 금융서비스 연계가 가능하도록 했다.
KB금융은 간편결제 플랫폼 안에 주요 계열사 서비스는 물론 마일리지 교차 서비스, 핀테크 협업 서비스까지 융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온라인의 경우 별도의 결제 앱 설치 없이 PC에서도 결제할 수 있는 '웹 페이' 기능을 제공한다.
해외 크로스보더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니온페이 오프라인 해외 가맹점에서 QR코드 방식으로 실물 카드 없이 현장에서 결제할 수 있다. 향후 NFC 기술을 이용해 비자·마스터카드 해외 가맹점 결제 및 ATM 출금 서비스도 추가한다.
KB금융이 자체 페이를 내놓은 것은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삼성페이 등이 주도하는 간편결제 사용이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간편결제는 2016년 이후 총 43개사 약 50종 서비스가 출현했다. 그러나 전통금융사가 자체 페이를 내놓은 사례는 없었다.
중장기로는 내년에 개화하는 마이데이터 시장에서 경쟁력을 미리 확보하자는 전략도 깔려 있다.
지급지시서비스업(PISP)이나 종합지급결제업을 영위하는 핀테크 사업자에 정부가 후불결제를 허용한 상황에서 자체 플랫폼 내 빅데이터 등을 확보하지 못하면 고객 유입이나 마이데이터 관련 사업에서 크게 밀릴 수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KB금융이 자체 페이를 내놓음에 따라 이제 국내 간편결제 시장은 빅테크 동종 경쟁 리그에서 전통 금융사가 참전하는 2라운드가 시작됐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산업팀장은 “내년에 PISP와 종합지급결제업 도입을 포함한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되면 기존 금융사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면서 “전통 금융사도 디지털 기반의 혁신 서비스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