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6>어느 소외된 혁신방식

아이러니라는 단어는 비즈니스 무대에 꼭 맞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지고, 잘 짜인 전략은 쉽게 허점을 드러낸다. 이론은 실전이 찾은 성공의 원리를 곧잘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새 길 찾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기 마련이다.

실상 아이러니의 어원은 그리스어 에이로네이아(eironeia)다. 우리가 흔히 쓰는 역설이란 의미보다 위장, 심지어 기만이나 변장에 가깝다고 한다. 경영에도 실제를 부풀려 가장하는 허풍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선 진가를 숨기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거기다 의도하지 않게 진의나 가치를 잘못 설명해서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경영에도 한때 유행했다가 시들해지는 것들이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란 것도 이 축에 든다. 물론 인기가 꽤나 있었고, 잘 알려져 있다. 이론도 꽤 정교하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이건 네 가지에 관한 문제다.

그 가운데 첫 번째이자 핵심은 고객 가치 제안이다. 이 첫 과정은 목표고객, 요구작업, 고객제안 등 세 가지로 완성된다. 여기서 요구작업이란 목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업이다. 물론 이것은 고객제안을 통해서 충족돼야 한다. 여기에 주요 자원, 주요 프로세스, 수익공식이 더해지면 한 편의 시나리오가 된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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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도 얼마든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 자신도 힐티, 애플, 다우코닝 같은 기업은 물론 도미노피자까지 이 방식으로 감싸 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걸 삼키는데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왜 그럴까. 실상 어려움은 고객 가치 제안 단계가 아니다. 대개는 목표고객, 요구작업, 고객제안으로 이어지는 구체화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실상 크리스텐슨 교수도 이 네 가지를 이 방식의 골조라 했다. 크리스텐슨 교수의 “단순해 보이지만 이 모델의 힘은 이것들의 복잡한 상호의존성에 있다”거나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의 변화는 다른 요소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에 많은 경영진은 고개를 젓거나 손을 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의를 전달해야 할까.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단서를 남겨 놓기는 했다. 재미있게도 '거꾸로'다. 크리스텐슨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수익 공식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꾸로 찾아가는 것”이다.

좀 풀어 보면 고객 가치 제안에서 시작하는 대신 우선 주요 자원, 주요 프로세스, 수익 공식이라는 삼발이를 펼쳐 놓고 거기서 나의 강점을 찾아 시작해 보는 방식이다. 그게 제품이든 비용이든, 남들보다 탁월한 서비스든, 브랜드와 명성이든.

그러고 보니 애플에는 창의 제품이 손에 있었다. 힐티와 다우코닝은 업계 최고의 제품과 품질 경영, 도미노 피자에는 피자맛이란 뭔가를 내게 묻는다면 떠올리게 되는 무엇이 각각 있었다.

“고객이 원하는 건 벽에 구멍을 내는 것이지 전동공구가 아니다”란 말을 떠올려 보자. 분명 건축업자에게 필요한 건 벽에 구멍을 내는 일이다. 그러나 공구란 도구 없이 시작할 수가 없다.

혁신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멋진 모델이 있다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혁신도 종종 연장통을 꺼내 들어야 할 때가 있다. 물론 맞는 연장을 찾아내야 하겠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숨어 있는 진의를 만끽할 수 있을 테다. 비즈니스 모델 재창조라는 멋진 제안이 만난 병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무한한 창의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36>어느 소외된 혁신방식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