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공공조달 시장 판로 개척을 위해 도입한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제도가 연이은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피해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경쟁사를 음해하기 위한 소송 남발이 적지 않다. 제도를 위반해 처벌을 받았더라도 법무법인 등을 통해 집행정지 처분을 받아내 공공조달 시장에 납품을 지속하는 사례도 있다. 강력한 규제력은 미흡한 가운데 소송 비용과 행정력 낭비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최근 5년간 '중소기업 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관련 행정소송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중기부 장관과 전 중소기업청장을 피고로 하는 149건의 행정소송 사건 가운데 87.2%인 130건이 중소기업 간 경쟁입찰 관련 소송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승소율은 높지 않다. 중기 간 경쟁입찰 관련 소송 130건 가운데 약 59%인 73건은 원고가 진 소송이다. 정부가 이긴 소송은 53건으로 40%에 불과했다.
정부가 진 소송 대부분은 행정조치를 무효화하기 위한 소송이었다. 실제 130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66건이 정부 조치를 무효화하는 소송이었다. 이 소송에서 중소기업이 패한 경우는 19건에 불과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경쟁입찰 관련 소송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지더라도 소송 기간 동안은 집행정지 가처분을 얻어 조달사업을 이어가는 일이 많다”면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변호사 수임료를 들이더라도 그 기간 동안 사업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의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입찰 금지로 인해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행정소송으로 가는 편이 오히려 저렴하다. 법원에서 손쉬운 가처분 판결을 받아와 1년간 조달 시장에 납품하는 것이 이득이다. 최종적으로 제도 위반이 법원에서 사실로 드러나게 되더라도 정작 중소기업에게 돌아가는 손해는 크지 않다.
중기 간 경쟁제품 제도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중소기업이 조달 물량을 따내는 중소기업을 걸러내기 위해 도입됐다. 실상은 실제 불공정 행위에 대한 근절은 이뤄지지 못하고 소송전만 급증해 변호사 일거리만 늘려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입장에서도 행정력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직접생산 확인을 하더라도 실제 제품 제작 과정에서 이뤄지는 하청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쟁 업체의 제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가리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정부가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회수한 금액은 5년간 1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불필요한 중기 간 경쟁제품 소송 남발을 줄일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위반사항에 대한 엄벌과 함께 피해가 명확하지 않은데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소송을 줄일 장치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 부처가 시행하는 사업에 중기 간 경쟁입찰 관련 행정소송이 이렇게 많은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불필요한 행정 낭비와 제도를 성실히 이행하는 업체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