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대결한 구글 '알파고'는 CPU 1920개, GPU 176개를 사용했다. 이듬해 구글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반도체 'TPU' 4개로 학습시간을 3분의 1로 소비전력은 10분의 1로 단축시켰다. AI반도체가 인지, 추론, 학습에 특화돼 진화하고 있다. 데이터 처리 효율을 크게 높이는 것은 물론 여러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해야 하는 자율주행차, 지능형 로봇과 같은 디바이스의 핵심부품이 될 것이다. 가트너 등 컨설팅 기관은 AI 반도체 시장을 2020년 약 184억달러에서 2030년 1179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산업에 AI가 확산되면서 AI 반도체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만 등 반도체 선도국은 AI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해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AI넥스트' 캠페인을 통해 AI와 이종칩의 통합, 뉴로모픽 칩 개발을 지원하고 대만은 '반도체 문샷(Moonshot) 프로젝트'를 통해 파운드리 부문의 강자 TSMC와 공동으로 1억3000만달러를 AI 반도체 R&D에 투자하고 있다.
정부도 약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을 올해 9월 착수했고, 10월에는 'AI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AI반도체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20% 달성, 혁신기업 20개와 고급인재 3000명을 양성해 '종합 반도체 강국'을 실현한다는 전략이다. 세계시장의 60%를 차지하는 반도체 최강국 자리를 지키면서 AI 반도체 분야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응용 분야별로 AI 반도체 전문 설계 역량, IP 등 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을 갖춘 전문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세계시장에서는 '하바나랩스' '모빌아이' '알테라'와 같은 혁신기업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 AI 반도체 분야 전문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필요한 인프라 지원과 함께 응용 분야별로 특화된 기술 개발, 성능검증, 상용화 등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둘째, AI반도체 전문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요-개발-생산이 연계된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중소 팹리스 기업의 혁신적인 AI 반도체 개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요기업 연계를 통해 미래 시장 요구사항을 설계에 반영하고 파운드리와의 연계를 통해 생산과 테스트 환경에 맞는 설계가 가능해야하기 때문이다. 수요기업-팹리스-파운드리 간 유기적 협업체계가 잘 구축되면 수요와 생산을 고려한 설계가 가능해지고 중소 팹리스 기업의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응용 분야별로 특화된 AI반도체 설계 및 SW 개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AI 반도체 파급력이 높은 분야별 기업과 대학의 협업체계를 구축해 AI 반도체 전문기업의 역량도 강화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AI반도체 운영, 제어를 위한 SW 개발인재 양성도 반드시 필요하다. AI 전문대학원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2018년 기준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7.3%, GDP의 7.8%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파운드리 부문도 세계 2위의 생산능력을 보유해 AI 반도체 육성을 위한 기본 역량은 확보돼 있다, 경쟁력 있는 팹리스 전문기업을 다양한 분야에서 육성하고 분야별 기업들의 AI 반도체 수요와 연계하는 생태계를 잘 구축한다면 AI 반도체 분야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종합 반도체 강국'을 실현해 또 한 번의 '반도체 신화'가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김창용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cykim@nip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