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뜻하지 않게 시의적절했던 '삽질'

[기고]뜻하지 않게 시의적절했던 '삽질'

창업진흥원장 2년차였던 지난해 “3개 시스템 개발에 힘을 쏟겠다”고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창업지원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얘기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삽질하는 것 아닌가?”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3개 시스템은 멘토링 시스템, 사업비 점검 시스템 개발과 창업교육 플랫폼 업그레이드였다. 창업진흥원은 창업자와 멘토가 만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멘토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고, 창업자들이 정부지원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도 보다 효율적으로 점검하고 싶었다.

창업계 일부 인사들이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데는 이유가 있다. '멘토링'이란 선배 창업자, 투자자, 전문가 등이 창업자에게 조언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대개 마주 앉아서 해왔다. 그러니 시스템을 개발한들 누가 쓰겠냐, 멘토링을 누가 온라인으로 하겠냐는 게 '삽질론자'들의 견해였다.

올해 초 멘토링 시스템 개발이 끝나갈 무렵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이에 이 시스템을 우선 원격회의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주간회의, 월례조회는 물론 온라인 설명회, 온라인 간담회에도 활용했다. 심지어 이사회, 정책자문회의, 협약 체결에도 썼다. 누적사용자는 9월 말 기준 1만3000명을 넘어섰다.

온라인 멘토링은 거리 제약을 받지 않는다. 지방 창업자도 서울 멘토한테 멘토링받을 수 있다. 오가느라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는 덤이다. 최근에는 멘토가 대여섯명 창업자들과 온라인으로 대화하는 '금주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해 호평을 받고 있다.

사업비점검 시스템은 정부 지원을 받은 창업자들이 지원금을 용도에 맞게 썼는지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초 개발을 끝낸 후 창업도약패키지에 적용하고 있다. 중간점검을 하지 않는 대신 이 시스템을 활용해 수시점검을 한다. 자금 사용 행태가 의심스러운 창업기업 위주로 점검하고 있다. 시스템을 활용하면 정기 점검이 2회에서 1회(최종점검)로 줄어 창업자 불편이 감소한다. 게다가 정부지원금을 함부로 쓰는 창업기업을 정확히 가려낼 수 있다. 예비창업 패키지와 초기창업 패키지에 시스템을 일부 적용하고 있는데, 알고리즘을 개선한 뒤 중간점검을 수시점검으로 갈음할까 한다.

창업교육 플랫폼인 '창업에듀' 역시 시스템 업그레이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대학 등 창업지원 기관들이 창업에듀 콘텐츠를 패키지로 묶어 창업교육에 활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일부 대학교는 학점 인정 창업 강좌에 창업에듀를 활용하고 있다.

창업에듀 사용자는 9월 말 기준 57만명으로 작년 연간 실적인 36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창업진흥원은 올해 2단계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콘텐츠 보강에 힘 쏟는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창업기업들이 '버티기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판국에 창업지원 전담기관인 창업진흥원은 '삽질 효과'를 거두며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작년에 3개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올해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

창업진흥원의 '삽질'이 올해도 지속된다.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을 연결해 주는 '온라인 데모데이'를 수차례 시도했다. 내년에는 월례 행사로 추진한다. 지방에 있는 창업자도 수도권 투자자한테 투자받기가 쉬워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창업지원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종래 외면했던 비대면 방식을 적극 채택하고 있다. 창업교육, 멘토링, 간담회나 설명회도 온라인으로 열리고 스타트업 페스티벌 등 창업 행사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코로나19로 창업지원의 효율이 현저히 개선되는 계기가 됐다.

김광현 창업진흥원장 khkim@kise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