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3분기 벤처투자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벤처투자 시장 양극화는 줄지 않고 있다. 전체 벤처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업 또는 바이오·의료 분야가 차지한지 오래다. ICT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날로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 육성 방침에 따라 3분기 투자가 늘었지만 정작 산업의 근간인 제조 분야에 대한 투자는 미미하다. 특단 대책 없이는 이러한 변화 추세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투자 투자심리 반등에도, 제조업 소외는 여전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신규 벤처투자가 2조8485억원을 기록했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에 비해 8.7% 줄어든 규모다. 2분기 16.9%에서 전년 대비 감소 폭이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잠잠해지기 시작한 7월부터 9월까지 신규 투자가 크게 증가한 까닭이다.
실제 3분기 신규 벤처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 증가한 1조1920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2분기에 비해서는 34.8% 급증했다. 올해 누적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8.7% 감소하며 2분기에 비해 감소폭을 크게 줄였다.
업종별 투자 쏠림 현상은 여전하다. 9월까지 신규 바이오·의료 투자는 7684억원, ICT서비스 분야 투자는 7298억원으로 전체 신규 투자 가운데 각각 27.0%, 25.6%를 차자한다. 두 분야 투자만 합쳐 전체 투자의 절반이 넘는다.
반면 ICT제조, 전기·기계·장비, 화학·소재 등 제조업 분야 투자는 각 2000억원이 채 안된다. ICT제조 분야 신규투자는 1189억원, 전기·기계·장비 분야는 1898억원, 화학·소재 분야는 1294억원을 9월 기준으로 기록 중이다.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6.7%에 그친다.
올해 3분기에는 일시적으로 투자 규모가 증가했다. 제조 분야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늘었다. 화학·소재 업종에 대한 투자는 지난해 9월 885억원에서 올해 9월 1294억원으로 46.2% 증가했다. 정부가 소부장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천명하면서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기부 관계자는 “전기·기계·장비와 화학·소재 분야는 정부의 소부장 육성 정책에 힘입어서, ICT제조 분야는 비대면 확산에 따른 반도체 전자부품 분야에 대한 투자 증가로 전년 대비 신규 투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원책이 투자 시장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ICT제조, 전기·기계 죽고 바이오·ICT서비스에 몰린 투심
실제 3분기 제조업에 대한 투자 증가는 정부의 소부장 육성 정책에 따른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직접 나서 소부장 전용 펀드를 신설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기업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등이 소부장 강소기업 100 같은 정부 지원 사업으로 유망 기업을 발굴하는가 하면 투융자복합금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투자에 나선 것이 영향을 줬다.
하지만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신규 투자에서 ICT제조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3.5%로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투자 규모는 1493억원에 그친다.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규모 투자를 기록했던 2013년의 2955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13년 당시 ICT제조가 전체 투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3%에 달했다.
2013년 1조3845억원에 불과했던 벤처투자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2777억원으로 커졌다. 벤처투자 시장 규모가 3배 이상 커지는 동안 정작 ICT제조 분야가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전기·기계·장비와 화학·소재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2011년 전기·기계·장비 분야가 전체 벤처투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5%에 달했다. 화학·소재 분야에 대한 투자도 같은 기간 10.0%를 차지했다. 반면 지난해 기준 전기·기계·장비와 화학·소재 분야가 전체 투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8%, 1.8%로 쪼그라들었다.
벤처투자 시장에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무렵부터다. 1조원 안팎을 오가던 벤처투자 시장 규모가 2조원대를 넘어서면서 벤처투자 시장에서 자금이 몰려들었다. 몰려든 자금은 대부분 ICT서비스와 바이오·의료 분야에 집중됐다. 2011년까지만해도 7.1%, 7.4%에 불과했던 ICT서비스와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각각 24.4%, 25.8%로 크게 늘었다.
◇회수 기간 길고, '대박' 어려운 제조투자...“전용펀드 마련 절실”
벤처투자 시장 안팎에서는 이처럼 양극화가 나타나는 원인을 투자 대비 회수가 더딘 제조업의 특성에서 찾고 있다. 괜찮은 플랫폼을 어느 정도 이용자만 유치하면 수익을 창출하고 추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ICT서비스 분야와는 달리 ICT제조의 경우 초기투자 비용이 크게 소요되고, 투자에 따른 회수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 등 장기 투자로 이른바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바이오·의료 분야처럼 제조업에서 대박을 기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회수를 우선 목표로 하는 VC 특성상 매력이 떨어진다”면서 “3분기 들어 제조업종을 중심으로 투자가 일부 증가한 것도 정부가 소부장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일정 부분 반영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제조벤처기업 역시 모험자본의 지분 투자보다는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해줄 수 있는 융자성 자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설비투자에 필요한 비용을 벤처투자로 유치하기에는 창업자의 지분 희석 문제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에서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를 기대하기에는 투자 회수 주기가 지나치게 길다”면서 “ICT서비스나 바이오·의료 분야는 어짜피 민간에서 선호하는 영역인 만큼 투자 비중을 줄여서라도 반도체 특화펀드, 제조업 전용 펀드와 같은 정책 목적 펀드를 확대해 소외 영역에 대한 투자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