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호텔 회의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회의장에서는 6세대 와이파이(Wi-Fi) 표준인 IEEE 802.11ax(이하 11ax) 관련 기술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단상에서 발표된 기고문은 300여명 엔지니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고문은 11ax 표준 범위를 6㎓ 주파수 대역까지 확장하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11ax 표준은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수준의 표준초안 2.0 버전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어느 국가에서도 승인을 받지 못한 6㎓ 대역을 표준에서 미리 지원하는 것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오랜 논의 끝에 기고문은 통과됐다. 6㎓ 대역은 기존 와이파이 기기가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그린필드(Greenfield)'에 해당한다.
그린필드를 활용한 와이파이 상용화 출시가 임박했다. 와이파이 얼라이언스는 11ax 표준을 바탕으로 6㎓ 대역을 활용해 추가 기술까지 구현한 제품을 '와이파이 6E'로 정의한다. 기존 11ax 표준 기반 2.4㎓·5㎓ 기반 기본 기술을 구현한 제품을 와이파이6로 정의했다.
2014년 5월 11ax 표준화 초기에는 기존 비면허 대역만 고려해 설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017년 미국과 유럽에서 6㎓ 대역을 비면허로 활용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을 감지했고, 발빠르게 표준 범위를 확장해 11ax 표준초안 3.0 버전부터 6㎓ 관련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표준초안 7.0 버전 단계로, 2021년 1월 표준 최종 발간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11ax 표준 초안을 기반으로 세계 최초로 2.4㎓·5㎓ 기반 와이파이6 탑재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내년 세계최초 6㎓ 기반 와이파이6E를 탑재한 제품 출시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와이파이 6·6E의 근간이 되는 11ax 표준은 단말기와 공유기가 밀집된 혼잡한 통신 환경에서도 주파수 분할 다중 접속(OFDMA) 기술을 통해 효율적인 통신이 가능하다. 이론상 최대 속도 9.6Gbps를 지원한다. 또 11ax 표준은 6㎓ 대역에서 기존 무선랜 접속절차를 간소화한다.
와이파이는 세계 인터넷 트래픽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롱텀에벌루션(LTE) 또는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담당한다. 와이파이 사용량을 감당하려면 보다 많은 비면허 주파수 대역의 할당이 필요하며, 미국과 한국 정부는 올해 7월과 10월 6㎓ 대역을 비면허 대역으로 선포했다. 와이파이6E를 통한 대용량 미디어 전송과 원격 영상회의 등 서비스 진화 길을 연 상징적 사건이다.
이동통신사에도 6㎓ 대역은 5G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다. 국제 민간이동통신 표준화기구(3GPP)의 5G NR-U(New Radio Unlicensed) 기술은 비면허 대역에서 동작하는 5G 통신 기술이다. 소비자가 사용할 최초 6㎓ 기술은 와이파이 6E가 분명이지만, 5G NR-U 기기와 공존하게 된다면 6㎓ 대역 활용도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5G NR-U는 별도의 면허 대역 기지국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운용이 가능하며, 스마트팩토리와 같은 새로운 5G 서비스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물론 6㎓ 와이파이 활성화를 위해서는 과제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6㎓ 전체 대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저전력으로 실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기존에 6㎓를 사용 중인 고정형·이동형 방송 중계 서비스 등에 미치는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허용 송신 전력은 기존의 5㎓ 대역 허용 전력보다 낮은 수준으로, 향후 안정적인 무선랜 서비스를 위해서는 최대 송신 전력 허용치를 상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경우 실외에서 6㎓를 사용하려면 AFC(Automatic Frequency Coordination) 서버에 접속해 해당 위치에서 운용 중인 기존 서비스에 영향을 주지 않을 채널 목록과 전력값을 획득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주파수 조정 시스템의 운용을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6㎓ 하위 대역(5925~6425㎒)에 한정해 실내외 구분 없이 동작 가능한 초저전력 모드를 허용했다. 해당 전송 전력은 일반적인 무선랜 서비스를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만약 5G 네트워크에 연결된 스마트폰이 6㎓ 대역으로 주변 기기들에 와이파이 핫스팟 테더링을 열게 되면, 자신만의 소형 5G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동 중에도 주변 기기들을 통해 증강현실(AR)·가상현실(VR)과 모바일 게임 등을 원활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올해 초 발표된 와이파이 6E 칩셋은 6㎓에서 160㎒폭 채널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2.1Gbps와 2㎳(0.002초) 지연시간의 성능을 구현했다. 6㎓ 대역에 주어진 총 1200㎒ 대역폭은 와이파이 6E 공유기 7개에 서로 다른 160㎒ 폭 채널 할당이 가능하다. 6㎓ 대역 와이파이 그린필드가 열어갈 새로운 무선 세상은 사무실, 학교, 공공장소에서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성능과 서비스를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손주형 윌러스표준기술연구소 연구위원 john.son@wilusgro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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