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때보다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애자일 조직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애자일(agile)은 '민첩한' '기민한'이라는 뜻으로 높은 불확실성 상황에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조직 자체를 소규모 팀 단위로 구성하고, 해당 부서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말한다.
이상에서 설명한 애자일 조직은 일견 조직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이 비대해진 조직구조로 인해 기민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만 주목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많은 스타트업 기업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창업 초기에는 아직까지 회사 업무 전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장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회사 직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때문에 많은 경우 대표이사에게 직접 해당 문제를 문의한 뒤에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현장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매번 이러한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면 창업자 업무가 과부하된다. 항상 직원 전화에 시달려야 하며, 한 가지 사안에 대한 업무 지시를 내리기 전에 해당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직원과 몇 차례 이상 통화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면 정작 많은 시간을 투여해 세심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안에 크게 신경을 쓰기 어려워진다. 이는 다시 기업 전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물론 창업자 중에는 소수 직원 동료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본인에게 문의하지 말고 자율성을 갖고 결정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스타트업 기업이 고용하는 직원은 기존에 자리매김한 기업과 달리 사회 경험이 일천하거나 관련 분야 지식이 다소 부족한 직원인 경우도 많다. 직원 이직률도 높아 업무 관련 경험을 축적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선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 관련 권한 이양은 오히려 직원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실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스타트업 기업은 어떠한 형태로 운영돼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하나 있다. 하버드의대 대학병원 병동을 대상으로 투약 관련 실수를 많이 하는 병동과 그렇지 않은 병동을 대상으로 어떠한 조직 문화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물론 실험 수행 전에는 당연히 투약 실수가 적은 병동이 업무 소통력, 팀워크, 치료 성과, 직원 만족도 등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달랐다. 실험 수행자가 불시에 병원을 방문해 조사한 결과 가장 안정성이 높은 병동으로 평가받아 왔던 병동이 오히려 더 많은 실수를 하고 있음이 발견된 것이다. 상위 직급자 업무 전달력과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병동일수록 일선에서는 더 많은 투약 실수가 유발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까? 연구진은 안정감 높은 조직으로 평가받은 조직이 실상은 상급자가 실수를 지적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로 인해 기록으로 남긴 투약 실수 건수를 인위적으로 줄여왔다. 자발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 업무를 추진하다 추후 지적을 받기보다는 아는 일이라도 물어보고 시키는 대로 업무를 수행하자는 문화가 공고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현장에서 전개되는 모든 업무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CEO는 없다. 또한 현장의 모든 상황을 매뉴얼화할 수도 없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조직을 구성해 분담해서 진행하고자 했던 의도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