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에 대해 우리 법체계와의 정합성,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심층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는 지난 6일 법무부에 집단소송법 제정안 및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상의는 집단소송법안이 미국 집단소송제를 모델로 하면서, 미국에는 없는 원고 측 입증책임 경감을 추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민사소송의 입증책임 분배 원리에 맞지 않고 세계적 유례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입증책임 경감은 환경 오염피해구제법, 제조물 책임법 등과 같이 정보 비대칭성이 큰 특수사안에 도입되는 것으로 민사상 모든 손해배상책임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소송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또한 집단소송법안이 특허법상 자료제출 명령 제도를 차용해 일반 손해배상의 경우에도 기업 영업 비밀을 예외 없이 제출토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영업 비밀은 기술유출 방지 등 각종 법률로 보호되는 기업의 핵심자산이다. 민사소송법의 문서제출명령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제출을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반면 특허법의 자료제출명령은 특허침해소송 등 특수사안에 한해 영업비밀 제출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일반 손해배상책임을 다투는 집단소송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상의는 남소방지장치 삭제 등 소송요건 완화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집단소송법안은 현행 증권집단소송법의 '3년간 3건 이상 관여자 배제' 조항을 삭제했고, 소송허가 요건도 미국보다 완화된 수준이다.
상의는 집단소송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집단소송은 사법적 법률관계를 다투는 민사소송 절차로서 복잡한 쟁점이나 손해액 산정 등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심제도가 있는 미국도 민사재판에서는 배심제가 거의 활용되지 않아 사실상 소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의는 징벌적 배상제를 전면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법체계 정합성, 해외 사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건의했다.
정영석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기업의 책임경영을 제고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기업들도 공감하고 있다”면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택가능한 다양한 대안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며,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경제주체들의 공감성·수용성 및 제도의 실효성이 충족될 수 있도록 입법영향평가를 비롯한 충분한 연구·논의가 선행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