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인이 8일(한국시간) 승리 확정 연설에서 유독 강조한 것은 '하나의 미국'이다. 대선 과정에서 상대 지지자 간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고, 경쟁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아 불거진 '혼란'을 빠르게 잠재우려는 의도다.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든 모두 '미국 국민'이라면서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관습은 지금부터 중단돼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부터 자주 사용하던 '여론전' 형태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4년 동안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분열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패자가 승복 메시지를 내왔던 미 대선 전통을 124년 만에 깨고 소송 입장을 분명히 한 상황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제 서로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자. 거친 수사를 뒤로 하고 열기를 낮추고 서로를 다시 바라보며 귀를 기울일 시간”이라면서 “우리가 진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직 업무 수행에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극복이 최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으로 오는 9일 코로나19에 대처할 과학자와 전문가 그룹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임명하겠다며 코로나19 극복과 경제 회복이 급선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전투에서 과학의 힘과 희망의 힘을 결집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전투, 번영을 건설하는 전투, 가족의 건강을 담보하는 전투'라고 표현했다. 인종적 정의 달성과 구조적 인종차별주의 제거, 기후변화 통제, 품위 회복, 민주주의 수호, 공정한 기회 제공을 위한 전투도 필요하다고 했다. 기후변화는 바이든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줄곧 강조해온 핵심 정책 어젠다다.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미국 복귀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국가가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이 다시 세계로부터 존경받게 하겠다”면서 “우리는 미국의 영혼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밤 전 세계가 미국을 주시하고 있다. 나는 미국이 전세계의 등불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힘의 본보기일뿐만 아니라 본보기의 힘으로서 주도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내년 1월 예정대로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트럼프 행정부 시대 미국의 고립주의는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영국, 호주 등 동맹과의 협력도 증진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사활을 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기'에 의존했던 북한과의 협상, 즉 톱다운 방식의 접근도 바뀔 것으로 점쳐진다.
기본적으로 바이든 당선인은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를 갖고 있다. 그는 “어떠한 러브레터(정상 간 친서 교환)도 없을 것”이라면서 “나는 원칙에 입각한 외교에 관여하고, 비핵화한 북한과 통일된 한반도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과거 원색적인 비난을 주고받은 사이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라는 양쪽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진다면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김 위원장이 핵 능력을 축소하는 데 동의한다면 만날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는 트럼프 행정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동맹국인 우리나라에 대한 협력 요구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치권은 바이든 당선인을 향해 축하 입장을 전하면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 추구를 강조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한미동맹이 더욱 굳건해질 것으로 믿는다”면서 “한국과 미국은 굳건한 동맹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대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재가동되고, 항구적 평화의 전기가 조속히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미국이) 통합과 안정을 곧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며, 국제사회 리더로서 역할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축하 메시지를 내놨다. 김 위원장은 한미 양국이 지난 70년간 강력한 동맹관계였음을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한미는 양국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
송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