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오헤이건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자신이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는 곳이 어떤 상황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한때 최고 기업이었다. 아니 제품 카테고리 자체를 창조했다. 그러나 후발 기업에 시장을 한참이나 뺏긴 참이었다. 제품 종류도 늘려 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물어보는 데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최고 제품이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 실상은 흔하게 일어난다. 한때 코카콜라가 그랬고, 게토레이·애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그냥 그렇고 그런 기업이 아니다. 비즈니스 역사 분기점이 된 그런 기업들이 휘청거린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꼭 지나간 애플 광고를 시간순으로 보라고 조언한다. 그럼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1990년 첫 광고는 한 중역이 직원들을 관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료가 “뭐 하냐”고 묻는다. 어떤 컴퓨터의 성능이 더 좋은지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성능표를 비교하면 되잖나”고 말하자 고개를 젓는다. “아냐. 저기 매킨토시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직원이 더 많은 걸.”
어느 광고는 매킨토시를 줌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니터가 켜지고, 컬러화면이 나온다. 이때 멘트가 흘러나온다. “새 매킨토시는 저렴하고, 거기다 컬러랍니다.”
그 이듬해 광고에는 꼬마가 등장한다. 아빠한테 공룡영화를 틀어 달라고 한다. 아빠는 한참을 더듬거린다. 아들이 친구네 집에 가겠다고 한다. “왜”라고 묻는 아빠에게 “거긴 매킨토시가 있잖아”라고 답한다.
어느 해는 그래픽 기능을 강조한다. 그냥 글자뿐인 서류와 사진이며 그림을 곁들인 서류를 비교해서 보여 준다. 물론 결론은 그래픽이라면 매킨토시란 강조다.
죄다 주된 메시지는 다른 컴퓨터보다 더 낫다는 얘기다. 성능이든지 직원들이 더 좋아한다든지 그래픽이든지. 다른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람들은 단골 메뉴다. 그러다 1997년이 된다. 그리고 전설이 된 광고 한 편이 나온다.
흑백화면으로 시작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옆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밥 딜런, 리처드 브랜슨, 토머스 에디슨, 테드 터너, 마리아 칼라스, 파블로 피카소. “여기 미치광이들이 있습니다. 부적응자, 불평분자, 문제아들…. 질서를 거부하고 다른 걸 주장하는 자들. 그러나 결국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뭔가를 바꿔 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애플 로고와 함께 그 유명한 슬로건이 나온다. '싱크 디퍼런트.'
실상 이 영상을 이해하려면 봐야 할 클립이 하나 더 있다. 스티브 잡스의 1997년 싱크 디퍼런트 스피치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날 잡스는 기업의 심장이자 영혼이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연설 끝에 이 광고를 처음 공개한다.
1997년은 쫓겨난 잡스가 컨설턴트 신분으로 애플로 돌아온 해였다. 그해 9월 17일 애플 CEO가 됐고, 그 후의 얘기는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꼭 한 번 '싱크 디퍼런트' 광고를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다소 카랑카랑한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바로 잡스 자신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