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터'가 디지털 전환 핵심 요소로 떠오르는 가운데 '산업데이터'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데이터 권리에 대한 명확한 법 조항이 없어 이해당사자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대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산업 디지털 전환 전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산업지능화협회가 최근 대·중견·중소기업 316개사를 대상으로 산업데이터 관련 조사를 실시한 결과 84.8%가 산업데이터 활용을 위한 법적 기반이 미비하다고 답했다. 또 83.8%는 특별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등 산업계는 산업 데이터 권리 규범 등을 담은 '산업 디지털 전환 촉진법' 제정을 지속 건의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를 보완해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권리 관계 모호한 산업데이터…기업 분쟁 불씨
최근 산업데이터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처음 산업데이터를 생성한 기업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부정한 목적으로 다른 기업의 산업데이터를 사용해도 명확하게 불법으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이는 산업데이터를 활용한 신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저해하는 큰 걸림돌이다.
국내 기업 A사는 과거 자사 데이터를 저장한 외국계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B사와 마찰을 겪고 있다. 업무 프로세스의 디지털 전환과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 자사 데이터 제공을 요청했지만, B사가 계약 만료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계약 종료 이후 산업데이터 권리 관계가 모호해진 사례다.
C사는 사내 컴퓨터수치제어(CNC) 공작기의 데이터를 확보해 다른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D사 센서를 부착했다. 이후 D사가 자사 산업데이터를 허락 없이 가져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D사는 C사가 사용하는 제품 서비스를 향상하기 위해 해당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니터링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C사는 D사 행위도 문제지만, 경쟁사에 해당 데이터가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결국 해당 데이터 권리를 포기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데이터 권리 관례에 대한 규범이 없어 현장에서 기업들의 혼선과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법적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반도체·AI 등 핵심 산업 발전도 저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외산 장비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서도 산업데이터 권리에 대한 법·제도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업체가 생성한 산업데이터가 고스란히 해외 업체 손에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A사는 반도체 설비에서 수집한 정형·비정형 데이터를 자체 분석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내부에서는 설비 효율화와 공장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대외적으로는 주요 협력사들과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외국계 장비회사 B는 자사 장비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외부 유출이 엄격히 금지된 영업비밀과 노하우라는 내규를 핑계로 협조를 거부했다. A사로서는 B사가 협조에 응한다고 해도 단순한 초기 데이터에 불과하거나 B사의 규격에 맞춰 가공된 데이터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활용하기 어려워 난감한 상황이다.
모호한 산업데이터 권리는 신시장 창출도 막고 있다.
AI 기반 로봇인형 전문업체 A사는 센서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사용자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향후 자사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연구기관, 정부 부처 등과 해당 데이터를 활용하고, 신규 데이터를 생성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방안을 기획 중이다. 하지만 데이터 관련 권리 관계가 모호해 협업 기관 협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산업의 디지털 전환 및 지능화 촉진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권리 규범과 함께 전통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다양한 법적 기반을 담았다. 정부는 국회와 협력해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데이터 활용·보호 원칙이나 권리 관계는 정책이나 예산이 아닌 입법으로만 규율할 수 있다”면서 “산업데이터 권리 관계, 선도사업, 표준화, 규제 개선, 국제협력 등 산업 특성에 맞는 다양한 지원 제도를 원활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별도 법적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