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paradox)'는 철학용어로 역설이나 이율배반을 말한다. 모순처럼 보이는 두 사실이 따져보면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다는 뜻이다. 최근 플랫폼 사업자 논란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 패러독스다. 과거 플랫폼 모델은 모든 기업이 지향하는 최고의 선이었지만 지금은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플랫폼이라는 사업모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론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180도'로 달라졌다.
시각 변화는 무엇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공정위는 최근 플랫폼 사업자를 겨냥해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입법 예고했고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법안이 통과되면 2022년쯤에는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식 자리에서 플랫폼 기업을 보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조 위원장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독점이 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거나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면 시장경쟁 저해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데이터 독점을 크게 우려한다고 전했다. 데이터든 시장점유율이든, 독점에 대해서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독점이 좋을 리 없다. 아이러니하게 이윤추구가 존재 이유인 기업 입장에서 독과점은 최고 매력 모델이다. 기업 역사를 보면 독점기업은 경쟁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수익을 올렸다. 대신에 대가는 컸다. 경쟁이 주춤하면서 기술·서비스 혁신은 사라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산업의 몫이었다. 불공정 행위는 모두 반시장적이다. 경쟁을 가로막고 소비자 편익이 준다면 응당한 조치가 필요하다. 책임과 의무를 물어야 한다.
그래도 플랫폼 속성은 감안해야 한다. 경제학에서 플랫폼 사업은 중개 혹은 양면시장 모델로 불린다. 시장거래 규모가 가격 뿐 아니라 가격 형성 구조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흔히 '장터'로 이야기하는 이유다. 두 가지 상황을 필연으로 동반한다. '네트워크 효과'와 '외부성(externality)'이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많을수록 혜택이 커지고 같은 네트워크 사용자끼리 편익을 나눠 갖는 식이다. 혜택이 큰 쪽으로 참여자가 몰리는 '쏠림(tipping) 현상'이 두드러지고 이탈할 때 기회비용이 커지는 '잠김(lock-in)효과'가 나타난다. 강한 자가 더 강해지고 약한 자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 선점'이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사업모델을 가장 먼저 만들고 재빠르게 진입하는 게 승부의 관건이다. 혁신은 이 과정에서 일어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네이버, 카카오 등 대표 플랫폼 사업자는 모두 같은 경로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물론 단점도 많다. 1등만 인정해 준다. 경쟁이 치열해 소비자가 외면하면 바로 퇴출이다. 버티려면 밤낮없이 변신해야 한다. 진입장벽이 '제로'이기 때문이다. 자칫 '자연독점'이라는 부작용이 나오지만 반대급부가 있는 셈이다.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함께 봐야 플랫폼 모델이 제대로 보인다. 방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독점과 혁신이 갈리는 게 속성이다.
시장은 변화무쌍하다. 기술은 빠르게 변한다. 소비자는 변덕이 심하다. 덩달아 기업과 사업모델도 정신없이 바뀌는 디지털 세상 한가운데 있다. 그래도 방향은 하나로 수렴한다. 모두 '혁신'이 최종 지향점이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플랫폼 모델도 마찬가지다. 필요하면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은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시장혁신을 자극하고 경제 주체 편익을 높여 주자는 것이다. 규제는 방법일 뿐이다. 과거 규제로 현재를 재단하기는 쉽지만 자칫 미래는 더 멀어질 수 있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