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전문성은 뒷전, 변리사 자격에만 관심 있는 그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회장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회장

지난달 12일 마감한 변리사 실무수습에 356명의 변호사가 신청했다. 50~70명 수준이던 예년에 비해 5배 이상 많은 변호사가 변리사 실무수습 집합교육을 신청한 것이다.

이처럼 많은 변호사가 변리사 실무수습에 몰려든 이유는 특허청이 코로나19로 인해 실무수습 집합교육을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공지가 큰 역할을 했다. 재미있는 점은 특허청이 온라인 교육을 잠정 보류한다고 하니 변리사 연수를 받으려고 직장까지 그만뒀다며 책임을 묻겠다던 변호사들이 교육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하니 이제는 오프라인 교육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집합교육과 현장연수 방식은 수습변리사 교육제도로 수십 년 동안 운영돼 온 것이다. 집합교육에서 누락이 생기면 제 손으로 기본 실무서류도 작성할 줄 모르는 수습 변리사가 현장으로 가게 되는 일이 생긴다. 실력 없는 변리사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돌아간다. 온라인 교육으로 충분할지는 변호사가 결정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비단 수습 변리사 문제가 아니다. 이미 변리사로 등록돼 있는 변호사도 전문성 측면에서 의심스럽다. 현재 특허청에 등록된 변리사 1만명 가운데 변호사 출신이 5700여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변리사 의무 연수를 이수한 변호사는 280명에 불과,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5000명이 넘는 '무늬만 변리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을 갖추기보다는 자격증 따기에 급급한 현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물론 국민의 기본권 등 권리를 보호하는 변호사, 기업과 발명가의 기술을 보호하는 변리사 모두 전문성이 핵심이다. 이처럼 전문자격사 분야에서 국민에게 전문성이 떨어지는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전문자격사 제도를 만들고, 관리도 하는 것이다.

변리사는 특허 등 산업재산권법 전문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특허는 기업은 물론 국가 산업 발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허 소송 하나로 기업의 흥망이 갈리는 지금 우수한 특허를 창출하는 변리사의 전문성과 직업윤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변리사 업무는 기술과 아이디어로부터 권리를 설계하는 것으로, 일반 소송서류를 작성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업무 영역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이러한 상식조차 외면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리사 제도를 주무르면서 혜택만을 누리려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변호사 행태를 견제할 수단이나 제도 장치가 없는 상황이다.

법을 존중하고, 법을 통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변호사지만 현실을 보면 현재 있는 법도 자신들의 직역 확대를 위해 서슴없이 거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변리사 자격 취득을 위한 시험 면제라는 큰 혜택을 받는 변호사들이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온라인 교육을 통해 지금보다 더 쉽게 변리사 자격을 취득해 보겠다고 집단행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변호사 전문 지식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동안의 기득권을 내던지고 각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 협업을 통한 상생의 길을 모색하길 기대한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회장 chairman@kpa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