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는 많은 불편과 경제난을 유발했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강점과 가능성을 확인하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비대면으로 물건을 사고 돈을 보내고 행정기관에서 일을 처리하는 게 일상화됐고, 이를 뒷받침하는 통신망은 막힘이 없었다.
이 같은 기반이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우리나라가 당연하게 해 낸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많이 어려웠다는 것도 확인했고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졌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비대면 경제 전환을 위한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국민이 비대면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확대하고, 국내 비대면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을 지원한다.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교육과 중소기업에 대한 보안취약점 점검도 아울러 추진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정부 사업을 현장에서 지원하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입장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디지털 신원확인 서비스 확대'와 '데이터바우처를 통한 기업의 데이터축적 지원사업'이다.
디지털 신원확인은 비대면의 일상화에 가장 중요한 기본 인프라다. 은행이나 주민센터에서 사람을 직접 대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면 기본으로 갖춰야 될 요소는 인터넷 저편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공인인증서, 신용카드정보와 같은 전자 인증 수단이 본인을 확인한다. 지난 5월 우리나라는 이 같은 수단을 사용, 정부 재난지원금을 신속하게 지급했다.
행정기관에 재난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이를 처리해야만 해 일처리가 매우 늦어진 다른 나라를 보면서 잘 갖춰진 우리나라의 비대면 인프라가 가진 속도와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정부 대책에는 모바일 공무원증, 운전면허증 등 분산신원증명(DID)의 활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정책이 반가운 이유는 종전의 공인전자서명이 비대면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로 충분히 기능해 왔지만 이를 가동하기 위해 반드시 설치해야 한 비표준기술이 불편했고, 새롭게 보급되는 간편인증서비스의 편리함은 크지만 안전성에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자공무원증이나 전자운전면허증 등은 행정기관이 확인하고 발행한다는 확실함이 있고 분산신원증명기술을 사용해 위조나 변조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한 정보만 선택해서 제출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정부가 이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면 다양한 서비스의 개발에 어려움이 있고 자칫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도 부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공이 제공한 인프라를 활용해 민간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침 정부의 정책방향은 민간 생태계를 최대한 활용하고 민간서비스의 발굴을 지원하는 점은 반가운 부분이다. 사람의 자격증명을 넘어 전자계약, 사물제어 등에도 분산신원증명을 활용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발굴한다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디지털 신원확인이 민간기업 취업, 민간시험 등에 적용되는 비대면 평가는 각급 학교나 공인자격시험 등에도 확대됐으면 한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도 올해 9월부터 민간자격인 '검색광고마케터'를 온라인에서 현장 시험감독 없이 비대면으로 진행, 수험생 편의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민간자격을 넘어 '리눅스마스터'와 같은 국가공인자격에도 확대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충분한 경험이 축적된다면 온라인 등교를 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에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바우처 사업 확대'도 기대되는 사업이다. 비대면 기술을 보유한 전문 기업 육성이 비대면 사회의 혁신 서비스 보급을 위해 긴요한 것은 분명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하려면 AI 알고리즘과 AI 개발에 필요한 교재에 해당하는 데이터,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컴퓨팅 용량은 필수다. AI 기술과 컴퓨팅 용량은 외부에서 조달이 가능하지만 전문 인력과 데이터는 확보하기가 어렵다. 데이터 확보와 전문가 양성에 기업의 요구가 높고, 그만큼 정부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데이터가 있는 기업과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연결하고 데이터 구매와 가공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수행하고 있는 이 사업에 KAIT도 참여해 데이터수요기업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중소기업은 받은 데이터를 활용해 기업의 비용 절감이나 생산성 향상이 가능했고, 수익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며 긍정 반응을 보였다. 데이터를 가공해서 제공하는 기업도 정부의 마중물을 통해 사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다만 지원 대상이 중소기업, 소상공인, 예비창업자에 국한된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데이터 가공 및 활용 역량이 더 낫고 혁신 서비스 개발 잠재력이 큰 중견기업, 대학, 의료기관 등이 제외된 것은 안타깝다. 좀 더 엄격한 심사를 거치게 하더라도 이들 기관에도 지원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지원되는 데이터도 상권분석정보 등 제3자에게 제공이 가능한 데이터에 한정된 것을 확대했으면 한다.
이종 데이터 간 결합이 허용된 만큼 데이터 결합에 필요한 제반 경비도 심사를 통해 지원되면 기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환정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상근부회장 yhj3133@kai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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