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가 처음 개발된 1947년 전 세계 인구는 약 20억명,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반도체를 최초 생산한 1961년에는 약 30억명 수준이었다. 약 50억명 인구이던 1990년 이후 전 세계가 글로벌 시대로 전환되면서 '자기 PR시대'라는 용어가 나오게 됐다. 전 세계 인구가 77억명을 돌파한 현재 이는 더 이상 회자되지 않는 매우 당연한 용어가 됐다.
산업 관점에서 이런 인구 변화는 77억개의 다양한 개성과 요구가 제품 및 서비스에 녹아들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 감에 따라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많은 산업이 발전해 나가고 있다.
반도체에서 다품종이란 설계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다양성의 핵심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스템온칩(SoC)을 포함한 시스템반도체이다.
시스템반도체는 AI, 사물인터넷(IoT), 스마트자동차, 빅데이터 등 빠르게 성장하는 차세대 산업의 핵심 부품이다. 인지, 제어, 고속 데이터 통신, 신호 추출, 연산 처리, 초고속 지능형 서비스 등 기능을 수행한다. 즉 완성된 전자제품 종(種)은 시스템반도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현재 약 2300억달러 규모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중심이 되는 미국은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대기업을 필두로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또 후발 주자인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반도체 굴기를 앞세워 정부의 전폭 지원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급성장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4월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팹리스 시장 점유율 10%,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35%를 목표로 중장기 연구개발(R&D)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또 대기업과 중소 팹리스 기업 역시 시장 확보를 위해 시스템반도체 투자와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투자와 더불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가장 큰 핵심 요소는 시장 수요에 부응하는 전문성과 통합성을 겸비한 시스템반도체의 설계 인력 확보이다. 반도체산업과 같은 지식 기반 경제에서 인재의 중요성은 그 어느 분야보다 강조되며, 모든 기술은 결국 사람의 머리와 손끝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국은 기존 실리콘밸리의 넓은 인재 풀을 적극 활용하고 있고, 중국은 정부가 2017년부터 매년 6조원 이상을 AI 반도체 인력 양성에 전폭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반도체 대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 반도체 산업 전반의 호황에 따른 낙수효과 등 최근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수요 폭증과 더불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시스템반도체 관련 종사자는 팹리스업계 5000여명을 포함한 약 3만3000명이다. 앞으로 3년 안에 7000여명, 2030년까지 약 2만명의 추가 전문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현재 대기업 중심과 메모리반도체에 인력이 편중돼 있어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인력난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인력난이 지속된다면 장차 우리나라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입지를 올릴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K-방역, K-팝과 같이 반도체 코리아는 세계인의 눈길을 충분히 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기회 삼아 위기 대응과 기회 창출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디지털 뉴딜의 핵심인 시스템반도체 전문 인력을 지속 양성할 수 있는 지원책을 시스템화해야 한다. 산업계와 정부 간 협력을 통한 장기 지원과 대학의 교육 혁신으로 산업 생태계 안정 구축이라는 큰 목표 아래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구용서 단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파워반도체상용화사업단장 yskoo@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