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00년 대일무역 역조가 심각한 부품·소재 분야에 대해 '부품·소재 특별법'을 제정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10년 후, 부품 분야 무역수지가 개선됐지만 소재 분야는 더욱 악화됐다. 완성품 업체 및 부품 업체 매출이 증가함에 따라 핵심 소재 대일 의존이 더욱 심화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소재·부품 종합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소재 중요성을 인지해 '부품·소재'에서 '소재·부품'으로 명칭을 변경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일본 아베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3대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전방위적인 소재의 전략무기화에 나섰다. 이에 과기혁신본부를 중심으로 '소·부·장 특별법'을 제정하고 소재 뿐만 아니라 부품 및 장비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위한 국가차원 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이런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산화 성공 이외에 근본적인 경쟁력은 강화되지 못하고 있어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고자 한다.
우선 정부의 소재분야 연구개발(R&D) 지원 및 투자현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12~2017년 정부 R&D 총 투자액은 100조원 규모며, 소재분야 R&D 투자액은 3.9조원 규모로 4%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 제조업의 18%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산업 규모를 감안하면 턱 없이 낮은 수준이다. 부처별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46%, 과기정통부가 32% 순으로 지원했으며, R&D 단계별로는 응용·개발연구가 각각 15.2%, 44.8%로 합계 60%를 지원한 반면, 기초연구는 불과 24.9%만 지원했다. 기업주도 응용·개발 연구에 집중 투자됐고, 상대적으로 기초·원천 분야 투자는 미미했다.
다음 원인은 단기 응용·개발과제 중심 지원에 있다. 기존 과제들은 선택과 집중 명목으로 특정 응용제품을 한정해 세계 최고 성능목표를 제시하고 과제 종료시까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가 주류였다. 실패 부담으로 인해 단순모방이나 추격연구 중심으로 진행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가 불가능했다. 신시장 창출 등 성과는 애초부터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필자는 2006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발간한 '탈추격형 기술혁신체제의 모색'이라는 보고서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탈추격형 기술혁신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고민과 대안이 제시돼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지하는 문제를 왜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걸까?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올해부터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16대 분야 50여개 기관 고유 과제들을 기관 역할과 책임(R&R)에 근거한 10대 중과제 체재로 재편해 대형화했다. 지속적인 집단·융합연구를 통해 보다 나은 성과를 창출하고자 미래원천기술 분야화 했다. 또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부처별 수탁사업들을 각각 융합혁신기술 개발과 산업계 협력 실용화 연구 등으로 구분해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한 바 있다.
이제는 우리도 소재분야 만큼은 기존 R&D 틀을 과감히 부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개인의 과제 이기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협력·융합 연구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지속가능한 소재 원천기술을 발굴하고 장기·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혁신소재 설계부터 합성, 물성·성능 평가, 기능향상, 응용분야 도출, 제조 혁신 및 상업화 지원 등 전주기 R&D 수행을 위한 '국가 혁신소재 플랫폼'을 구축하고 원천기술 공급기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남들이 가 보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10년 후, 아니 30년 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소재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을 꿈꿔 본다.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소재연구본부장 yoonsch@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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