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반도체'로 주목받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업체들이 우리나라 배터리 연구 인력을 빼가려는 시도가 포착됐다. 중국 배터리업계는 국내 헤드헌팅 업체를 동원, 배터리 산업 동향 유료 자문역 요청을 빌미로 연구 인력을 전방위로 접촉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인력 유출에 대응할 업계와 정부의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국내 헤드헌팅 업체는 배터리 연구 인력에 '국내 이차전지(배터리) 산업 동향' 관련 유료 자문역을 구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메시지는 '배터리 유료 자문이 가능하면 회신해 달라'는 내용으로,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배터리 산업동향 △배터리 개발 프로세스 △배터리 기술 트렌드 등 자문에 응하면 40만~100만원을 지급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같은 유료 자문을 빌미로 암암리에 이직 제안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문에 응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18일 “(헤드헌팅 업체 관계자가 아닌 해외 배터리 업체 측 실무자가) 채용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토대로 이직 제안을 해 왔다”면서 “경력 사항이나 수행 프로젝트 등을 주로 물어봤다”고 전했다.
이들의 주요 타깃은 배터리 연구 인력이다. 대리급 기준으로 제시된 연봉은 '1억원+α' 정도다. 차·부장급은 1억원 이상으로 연구 책임자 자리를 주겠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헤드헌팅 업체 확인 결과 고객사는 '중국 대형 배터리 업체'였다. 고객사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중국이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통해 의뢰했다고 말했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또는 자동차 업체들이) 의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은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한국 배터리 연구 인력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 CATL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유럽 완성차 시장 본거지인 독일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특히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한국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배터리 연구 인력을 상대로 고액의 연봉을 제시, 이직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한국 배터리 전문 인력 유출 정황은 이미 다수가 포착됐다. 중국 부동산 재벌 기업 헝다(에버그란데)그룹은 전기차 제조 회사를 세우고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연구소장 출신 임원을 영입한 바 있다. 핵심 간부진도 대부분 한국인이다. LG화학 출신 배터리 개발센터장과 삼성SDI 배터리 엔지니어 등 국내 배터리 3사 인력으로 이뤄졌다. 유럽 신생 업체 노스볼트에도 국내 배터리 연구 인력이 대거 영입된 상황이다.
문제는 국내 배터리 인력 유출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산업혁신 인재성장 지원사업'에 배터리를 처음 선정했다. 미래 인력을 기르기에 앞서 인력 유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국가산업으로 배터리를 지정, 전폭 지원하고 있다”면서 “최근 한국 미래 인력을 향한 유혹이 거세지고 있어 국가 차원에서 산업 기술을 보호하는 것처럼 배터리 인력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폭풍성장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지산업협회는 올해 배터리 생산이 31조원으로 32% 증가하고, 수출도 70억달러로 5.7% 증가해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및 신모델 출시 등에 힙입어 올해 이차전지 내수 규모는 5조5000억원으로 24.1% 확대가 전망된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