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계 안팎에서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 총수부터 각 경제단체장까지 저마다 기업가정신을 신년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10년 전부터 줄곧 강조했던 사람이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다. 황 대표는 이미 10년 전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의 기업가정신 모범 사례를 발굴하고 청년과 예비창업자에게 전파·확산하는 역할을 앞장서 수행했다. 열정과 도전, 미래의 창조, 위대한 혁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황 이사장과 재단이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의 다섯 가지 핵심 가치다.
황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지금이야 말로 기업가정신을 기업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로 확산시킬 기회로 보고 있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도 사회적 책임을 비롯한 새로운 기업가정신이 깃들 때라고 역설한다.
또 정부가 앞장서 민간이 주도하는 소재·부품·장비 상생 생태계를 조성할 기반을 마련해준 것처럼 혁신을 위한 초기시장육성 민간위원회를 발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에는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한 만큼 정부가 미처 속도감 있게 나서지 못하는 분야에서 민간이 앞장서 인·허가 등 규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구상이다.
대담=김승규 벤처유통부장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 전반이 침체된 분위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기업가정신과 기업가 역할은 무엇이라고 여기는지.
▲기업가는 좋을 때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 지금처럼 모두가 위기라고 생각할 때가 덜 위험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모두가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가정신이라는 것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은 코로나로 힘들지만 우리는 늘 과거부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성장했다. 과거에는 가장 지식수준이 낮은 국가 가운데 하나였고 최빈국이었다. 인내와 고생을 극복하는 헝그리 정신이 저절로 나왔고 그것이 성장의 토대가 됐다.
성장 과정에서 한국은 늘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을 통해 편하게 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를 뒤 따라오는 국가가 없어서 쉬웠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보다는 훨씬 큰 나라인 중국이 반대로 우리가 닦아온 길과 시장을 침범하고 있는 상황이다.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코로나가 닥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중국이 더 빠르게 따라왔을 것이다. 우리를 추격하는 경쟁자의 속도를 늦춰줬다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런 것이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업가정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하나.
▲이제는 기업가정신이 기업하는 사람, 사업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갖춰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최빈국에서부터 성장했다. 너무 가난한 나라이니 돈을 버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라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기업가정신은 돈 버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만들어주는 정신'을 기업가정신이라고 해야 한다. 과거에는 극복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행복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기업가이고, 사업을 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일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일은 또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좋은 지식을 꺼내 잘 살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야 말로 기업가정신이다. 그래서 기업가정신이 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필요하다.
-기업가정신 확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설립된 지 이제 10년이 지났다. 재단 설립 이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기업가정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기업가정신이 모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기업가정신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어떻게 기업가정신을 함양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숙제다.
앞으로는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지속가능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릿속에 기업가정신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위해 재단에서 기업가정신연구소와 기업가정신학회를 발족했다. 연구소가 연구하면 학회를 통해 공유하는 방식으로 기초 그림을 그렸다. 두 조직을 강화해 대한민국 모두가 기업가정신을 실천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제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다. 스타트업과 청년에게 기업가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대한민국 어머니에게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에게 기업가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어머니가 다시 자식에게 기업가정신을 교육시키게끔 하는 것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
기업가정신의 확산을 위해서는 정부의 리더십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 담당자도 혁신과 창조를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최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기존 사업자와 충돌이 불거지는 사례가 잦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면. 어떤 방향의 기업가정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여기나.
▲기업가정신의 확산과 혁신의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혁신에 방해가 되는 고정관념과 기득권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혁신의 가치는 시간에 반비례한다. 빠른 시간 안에 혁신의 가치를 펼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식, 기술, 정보, 통계 등이 빛의 속도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에게 공유되는 시대다. 플랫폼 사업자의 발전은 당연하다.
동시에 플랫폼 사업자들은 앞서 언급한 '공유'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자신의 성공과 행복이 스스로와 자기 기업, 직원들, 생태계 내 구성원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는 기존 사업자들과는 법이나 제도 측면뿐 아니라 파트너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기업가정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과거처럼 단순히 돈만 벌어 세계적 기업이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돈 많이 벌겠다고 국민에게 불행을 줘서는 안된다. 작은 기업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행복을 만들고 미래 대한민국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편이 낫다.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지금의 벤처기업은 기업가정신을 잃은 경우가 많다.
-좀 더 많은 벤처기업,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지원해야 할까.
▲진짜 혁신하는 기업을 밀어줘야 한다. 그런데 정작 혁신한 기업은 자꾸 죽어버린다. 혁신은 다른 사람이 시도한 것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것이 혁신이다.
혁신의 생명은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을 놓치는 순간 곧 낭비가 된다. 아울러 정부 또한 혁신에 대한 리스크를 감내하는데 어려움이 클 수도 있다.
그래서 민간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혁신을 위한 민간위원회가 필요하다. 매출 일부를 담보로 잡건 어떤 방식으로든 시장에 큰 문제가 없고 혁신성이 있는 서비스와 제품은 조건부로 영업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허가 문제로 시간이 늦춰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을 민간위원회에서 맡아 해결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혁신경제가 자리 잡을 수 있다. 혁신성장을 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혁신위원회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소재·부품·장비 육성 사례에도 알 수 있듯 초기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초기 시장을 잡아야 한다.
초기 시장을 열어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초기 시장이 열리지 않으면 다음은 아무것도 안 된다. 초기 시장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위험 감수는 공무원이 할 수 없다. 혁신을 위한 초기시장육성 민간위원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는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과학기술은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먼저 시작하느냐 아니면 늦게 시작하느냐, 또는 힘들게 만드느냐 쉽게 만드느냐 차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안된다고 매번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소부장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인 반도체에서는 1등을 했는데 왜 소부장은 안되는 거냐. 한국이 반도체 1등을 15년간 하는데, 소부장은 계속 세계 꼴지였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동안 안 한 것을 못 한 것이라고 말했던 거다.
소부장 분야에서의 지난 1년간의 성과는 지난 60년의 소부장 산업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일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 일을 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의식이 자리잡게 했다는 사실을 현대 기술사·산업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로 볼 수 있다.
-올해 재단의 핵심 사업과 어젠다는.
▲올해로 재단이 10주년을 맞는다. 비전과 미션을 재정립하고 기업가정신 확산의 중추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 방향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1000만 기업가정신 네트워크 확보와 재단만의 콘텐츠를 확보할 계획이다. 나아가 연구소에서는 '한국형,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주요 어젠다로 삼아 연구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로서 새해 목표가 있다면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에 집중하고 있다.
반도체는 모든 기술의 융·복합이다. 디스플레이가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전기를 빛으로 바꾼다면 태양광은 반도체를 이용해 빛을 전기로 바꾸는 것이다. 주성이 가진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3가지 부문이 함께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에너지가 중요하다. 화석에너지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특히 태양광이 중요해질 것. 태양광 효율이 35% 이상만 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스마트카. 자율주행, 날아가는 택시 등 새로운 모빌리티 전반에 태양광이 적용될 것이다.
주성엔지니어링에서도 그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후배기업인에게 기업가정신 확산을 위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은 성공은 혁신을 통해 만들 수 있지만 큰 성공은 관계를 통해 만드는 것이다. 혁신은 결국 좋은 관계를 이기지 못한다. 좋은 관계는 공유를 통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유의 귀중함과 가치를 아직 모른다.
특히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이런 사실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작은 부자는 근면성실이 만들고 큰 부자는 하늘이 만든다고 한다. 하늘이 곧 민심이고, 민심이 곧 관계다. 공유에 대한 고민을 통해 더 큰 성공을 만들어야 한다. 공유하지 않는 기업은 큰 기업이 될 수 없다. 공유의 가치를, 공유의 크기를 인식하라고 꼭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을 착취해가며 홀로 돈을 버는 것은 기업가정신이 아니다.
○황철주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은…
1986년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전지를 비롯한 LED 및 OLED 제조장비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반도체 장비 국산화와 함께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10년부터는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아 벤처 창업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엔젤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이끌기 위한 핵심 역할인 소부장상생협의회장을 맡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