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주요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이후 우리나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해당 소재·부품 국산화 노력을 경주했다. 그 결과 최근 우리나라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패널 시장 주도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국가기술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가운데 여전히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크고 외산 의존도가 높은 것이 장비 분야다. 현재도 구매가 기준 70% 이상 장비를 미국, 일본, 독일에 의존하고 있어 위기의 불씨는 잔존해 있다.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이전인 2017년부터 연구장비 국산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과학기술 일자리 창출과 글로벌 과학강국 진입을 목표로 '연구장비산업 혁신성장 전략'을 마련했다. 전략에서 국산 연구장비 기술경쟁력 확보, 연구산업 생태계 조성, 해외시장 진출 지원 등 구체적 전략을 제시했다.
이 같은 전략에 따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은 연구·산업 현장의 가마우지 폐해(중간 가공국이 원자재·부품 조달국에 이익을 뺏기는 것)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장비 국산화가 선결조건임을 인지하고, 2015년 조직 내 '연구장비개발부'를 설치해 관련연구를 수행해왔다.
그 결실로 2018년 장기수 KBSI 박사팀은 '공초점 열반사 현미경'을 독자 개발하고 관련 기술을 광학현미경 전문기업인 나노스코프시스템즈에 이전해 장비 국산화를 도모하고 있다.
순수 국산장비인 '공초점 열반사 현미경' 신제품은 외산 대비 10배나 우수한 분해능을 갖고 있어 미세패턴 공정기술력이 곧 시장지배력인 반도체시장에서 반도체 발열에 의한 수명저하 문제를 정밀 분석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에 단순 기여하는 차원을 넘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최초의 장비라는 점에 그 의미가 크다.
2019년에는 최연석·박승영 박사팀이 외산 장비가 독점해왔던 물리·화학 분야 기초연구에 필수적인 연구용 전자석 7종을 상용화했고, 고효율 전자석 구조기술을 알앤디웨어에 이전했다. 출시 제품은 국내 주요 연구기관에 10대 이상 판매됐고, 동급 외산장비를 완전하게 대체할 국산 제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외에도 KBSI는 보급형 투과전자현미경, 초고자기장 고온초전도자석, 이차이온 질량분석기 등 다양한 첨단 연구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대학, 연구소, 산업체와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연구산업 육성을 위한 체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백전백승하려면 지피지기해야 한다. 일본 수출규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한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KBSI는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연구장비 개발 관련 원천기술을 대학, 산업체 등 현장에 제공해 연구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첨단장비 국산화를 가속화하며 정부출연연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 hsshin@kbsi.re.kr
-
김영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