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명 승객을 태운 여객기가 이륙한다. 목적지는 어둠 속이다. 태양의 극성 변화로 빛을 쬐면 인간은 마치 중성자탄에 맞은 것처럼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행기는 태양을 피해 서쪽으로 항행한다. 중간중간 착륙해 급유와 엔진 수리를 해야 고객 목숨을 지킬 수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벨기에 드라마 '어둠 속으로' 줄거리 설정이다.
승객은 기내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 논문을 검색하고 지상에 남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메시지도 보낸다. 비행 중간에 합류한 군인이 전범자였다는 기사를 찾아 안전한 비행을 위해 그들을 따돌릴 묘수도 생각해낸다. 부상당해 정신을 잃은 파일럿을 대신해 유튜브에서 비행기 착륙하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생존을 돕는 건 기내 와이파이다. 기내 와이파이 (IFC, In-Flight Connectivity)는 지상망과 위성망을 이용해 기내에서도 인터넷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지상망은 주로 안테나 중계기를 이용한다. 비행기가 가는 항로의 지상에 기지국 안테나를 세워놓고 출력을 세게 설정해놓는 방식이다. 기지국을 설치할 수 없는 사막이나 다른 국가에서는 위성으로 통신 전파가 핸드오버 된다. 이 덕에 국내선이든 국제선이든 지상망과 위성망의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인터넷이 끊기지 않고 제공된다.
속도는 지상에 비해 느린 편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2020년 말 우리나라 평균 와이파이 속도는 다운로드 기준 381.32Mbps인데 반해 기내 와이파이는 9.8Mbps에 그친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영상 다운로드나 인터넷 전화 등은 사용이 제한적이다.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는 2004년 항공기 제작사 보잉이 야심차게 CBB(Connexion By Boeing)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루프트한자를 비롯, 다수의 항공사가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위성 인터넷 사용료가 저렴하지 않은 탓에 수익성 문제로 2006년 공식 철수했다. 대한항공도 2005년 참여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서비스를 중지했다.
2017년 아시아나 항공이 신기종 A350 항공기를 도입하며 유료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1시간에 12달러, 3시간에 17달러, 24시간에 22달러 정도가 부과된다. 대한항공도 2018년부터 CS300 국내선에서 서비스를 다시 시작했다.
데이터를 소량 무료 제공하는 항공사도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모든 고객에 20MB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고 퍼스트나 비즈니스석에 탑승하면 비행 내내 데이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델타항공은 미국 국내선에서 메시지 등 일부 서비스를 무상 제공한다.
미국의 'Gogo'와 'ViaSat'이라는 업체가 대표적으로 항공기 기내 와이파이를 공급하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 자회사인 PAC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KT SAT이 기술을 개발 중이다. 다만 코로나19로 비행기 이용률이 현저히 감소하자 기술 개발이 더뎌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돼 국내 기내 와이파이 기술이 비상할 날을 기대해본다.
손지혜기자 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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