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란 말이 있다. 주식시장에서 선물이 현물을 좌우하는 현상을 비유할 때 흔히 쓰이지만 통상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의미한다. 지금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그렇다.
한국 금융 산업은 오랜 기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려면 공인인증서, 카드번호, 카드유효성검사코드(CVC) 등 18단계를 거쳐야 했다. 또 모든 것이 연결된 스마트 시대가 열렸지만 대출, 보험 등 금융 기본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지점을 직접 방문해서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이렇듯 불편하고 획일화된 금융 서비스는 다행히 최근 몇 년 동안 간편결제로 촉발된 핀테크 등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카드 대신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결제가 가능해졌고, 앱 하나로 여러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대출을 받으러 직접 서류를 들고 이 은행, 저 은행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하나의 앱에서 다양한 금융회사 상품을 비교해 고르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금융이 소비자를 포용하기 시작했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은 지난 2006년에 제정된 후 큰 변화 없이 아날로그 규제에 머물러 있던 것을 디지털 금융에 맞게 전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마이페이먼트, 종합지급결제사업자 등 디지털 금융 혁신 서비스 도입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디지털 금융 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각종 안전장치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금융을 위한 운동장의 체질 개선 출발점이다.
디지털 금융은 어떤 특정 업종이 아니다. 금융 이용자를 편리하게 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디지털 금융의 주인공은 기존 금융회사도, 핀테크 업계도 아닌 이용자다.
이용자가 좀 더 쉽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이 금융 혁신의 핵심이다.
간편결제,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서비스 등 지금까지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더 넓어지고, 즐길 거리가 많은 운동장에서 이용자 중심의 새로운 창의 금융서비스가 탄생하는 것, 이것이 금융혁신의 몸통이다.
그러나 최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꼬리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 전업주의 울타리 안에서 특별한 도전이나 응전 없이 사이 좋게 이익을 나눠 가져온 금융업권 입장에서 신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기업들이 기존 금융 경계를 새로 쓰는데 대한 우려는 이해한다.
그렇지만 전금법 개정안이 핀테크 업계에 대한 특혜이며 금융시장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시각은 예부터 기득권이 혁신을 방해하는 전형의 마타도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래가 아닌 과거, 소비자 이익이 아닌 업계 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꼬리'의 반발이다.
핀테크업계는 특혜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동일 라이선스, 동일 규제에 대해서는 바라고 환영하는 바이다.
또한 전금법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빅테크의 외부청산 의무화, 이용자 자금의 외부 보관 의무화, 우선변제권 부여라는 빈틈없는 3종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새로운 금융 산업이 등장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성장을 막는 낡고 오래된 것들은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현실과 맞지 않는 법은 과감히 개정하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질 새로운 운동장은 어느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기존 금융권과 핀테크업계 모두가 혁신을 시도하며 성장할 수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 금융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의료, 방역과 마찬가지로 혁신에도 골든타임은 존재한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비대면 시대를 맞아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멈칫 하는 사이에 골든타임은 지나갈지도 모른다. 이제 기존 금융권과 핀테크업계 모두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동장에서 금융혁신을 향해 매진할 때다.
류영준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협회장 korfin@korf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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