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정부, 차량용 반도체 자립화 '시동'…미래 먹거리 선점한다

국내 완성차, 수입 의존율 98%
정부, 내년까지 2047억원 투입
신기술 개발 등 국산화 기초 다져
기업인 격리면제 등 단기 대책 마련도

#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전례 없는 물량 부족 상태에 빠졌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완성차 업체들은 생산량 감축에 나서며 피해 최소화에 안간힘이다.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미국,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 글로벌 업체들이 기술 주도권을 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 자동차·반도체 기술을 확보했지만 차량용 반도체 품목에서는 90% 이상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 위기를 미래 산업을 육성하는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반도체 확보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 진입을 위한 국내 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이슈분석] 정부, 차량용 반도체 자립화 '시동'…미래 먹거리 선점한다

◇반도체 강국 韓, 車 반도체가 없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산업부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 완성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98%를 해외에서 공급받고 있다.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는 우리나라가 정작 미래 산업으로 꼽히는 차량용 반도체에서는 고전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국내 자동차 반도체 분야 팹리스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연매출 10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이다. 구동을 비롯한 차량용 반도체 핵심 기술을 개발할 전문인력과 기업도 태부족이다. 파운드리는 수급이 불안정한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정 자체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국내 생태계 상황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차량용 반도체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높은 기술 수준과 낮은 수익성은 국내 기업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휴대폰, PC 등과 비교해 수요가 적은 것은 물론 플랫폼 표준화 미비로 대량 생산이 어렵다.

사람이 탑승하는 자동차 특성상 높은 신뢰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력도 요구된다. 이를 만족하는 국제규격을 충족하기 위한 장기간의 인적·물적 투자도 필수다.

산업부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는 설계와 제조, 실차 테스트까지 수년 이상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완성차 업체 중심 협력이 필수”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수립·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대·협력으로 수급난 넘는다

정부는 최근 관계부처 합동으로 '차량용 반도체 단기 수급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차량용 반도체 단기 수급 대응 △중장기 산업역량 강화 △자동차-반도체 기업 간 연대·협력 방안 등이다. 가장 먼저 자동차 반도체 수급 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단기 조치에 총력을 쏟는다.

먼저 국내 수요 물량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을 감안, 국제사회 협력 강화를 추진한다. 정부는 민·관 협력 채널을 활용해 주요 국가, 해외 반도체 기업, 협회 등에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타진 중이다. 특히 여러 글로벌 업체의 차량용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고 있는 대만과 협의에도 돌입했다.

관세청은 지난달부터 차량용 반도체 부품의 통관 절차를 간소화했다. 자동차 생산 차질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수입 차질 시 자동차 생산 중단이 우려되는 품목에 대해 코로나19에 준하는 관세행정 긴급지원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도화한다.

차량용 반도체 조달 관련 기업인 출·입국 시 격리면제 신속심사를 적용하는 '패스트트랙'도 추진한다. 질병관리청은 이와 관련해 구매·조달 등 필수 목적 출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예방 접종 하는 세부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단기에 대체 공급 가능한 차량용 반도체 발굴에도 주력한다. 조기 성능·인증을 지원해 신속한 사업화를 유도할 계획이다.

또 올해 400억원이 투입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양산성능평가지원사업 등에 차량용 반도체 분야를 별도 트랙으로 신설, 올 상반기 중 지원한다. 완성차 기업과 반도체 기업(파운드리, 팹리스 등)을 연계한 협력모델을 발굴해 패키지로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차량용 반도체 자립화' 시동

정부와 산업계는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 부가서비스가 융복합된 미래차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내연차에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는 300개가량이다.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에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 2000개 이상이 요구된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시급히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걸음마 수준인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상황을 감안, 기초 체력부터 다질 계획이다.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과 생산 인프라 확보, 연대·협력 체계 구축 등을 집중 추진한다.

먼저 지난해 시작한 미래차 핵심 반도체 R&D에 내년까지 총 2047억원을 투입한다.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기술개발 사업, 자율주행 기술개발 혁신사업 등으로 반도체 및 주요 부품 자립화를 지원한다. 올해는 차량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에지 컴퓨팅 칩 등으로 지원영역을 확대한다. 내년부터는 신소재 기반 차세대 전력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나선다.

생산 인프라 부문에서는 국내외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를 팹리스가 부담 없이 활용하도록 시제품 제작 비용 지원을 강화한다. 중소기업이 많은 국내 팹리스 업계 비용 부담을 최소화, R&D 결과물이 양산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늘리기 위함이다.

앞으로 자동차, 가전 부문에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시장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 파운드리 투자 지원도 강화한다. 상반기 내 국내외 파운드리 미래 전략을 분석해 투자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