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백신여권, 한국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기한 서울여대 교수
이기한 서울여대 교수

10여년 전 국가기술표준원·외교통상부·법무부 등과 함께 수십 차례 국제회의를 다니면서 전자여권 표준 회의에 참석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자여권 및 자동 출입국 관리 시스템을 국제 수준 이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이렇게 어렵게 추진한 전자여권이 '장롱여권'으로 전락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이슬란드, 중국, 이스라엘 등은 종이 형태의 백신 증명서다. 스웨덴은 전자 증명서 형태고, 덴마크는 디지털 백신여권을 발급할 계획이다. 미국, 영국, EU,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은 모바일폰 앱을 이용한 백신여권을 발행하려 한다. 그 이외에도 전 세계에서 백신여권 개발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대두된 백신여권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종이 형태의 백신여권은 훼손, 위·변조 등 신뢰성 문제가 있다. 두번째 IATA 등 모바일 여권은 모든 사람이 모바일폰을 사용해야 한다. 전 세계 모바일폰에 탑재된 백신여권을 처리하기 위한 인프라가 있어야 하고, 모바일폰에 저장된 백신 접종 정보의 보안성·신뢰성이 가장 큰 문제다.

세 번째 다양한 형태의 백신여권 남발이다. 우리나라 예를 들어보면 160여개국의 방문객들이 각국에서 발행한 백신여권을 가지고 온다면 이들 모두를 처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각국에서 발행한 각종 백신여권을 어떻게 신뢰할 것이냐이다.

이에 따라 전자여권에 백신 관련 정보를 탑재한 백신전자여권이 해답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표준에 의하면 전자여권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부분(종이)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부분(칩)으로 나뉘어 있다.

전자여권 칩에 백신 종류·접종, 코로나19 검사 등에 대한 정보를 삽입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고 비자(VISA) 마크 등을 붙이는 것처럼 여권에 백신·코로나 검사 등에 관한 정보를 인쇄해서 붙일 수도 있다.

별도의 백신여권이 아닌 기존의 전자여권에 백신 정보 등을 추가한 백신전자여권을 쉽게 발행할 수가 있다. 물론 전자여권의 겉표지에 전자여권 마크처럼 백신 마크를 붙이면 기존의 전자여권과 구분도 할 수 있다.

백신전자여권은 기존의 전자여권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백신·코로나 검사 등 관련 정보만 읽을 수 있도록 전자여권 관련 시스템을 조금만 업그레이드하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백신전자여권은 전자여권이기 때문에 신뢰성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리고 하나의 여권만 들고 다니면 되므로 여권 소지자도 편리하다.

우리나라는 백신전자여권 준비가 이미 완료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전자여권 발급을 각 시·구청에서 한다. 또 시·구청은 보건소랑 연계돼 있다. 구청보건소에서 접종한 백신 정보 및 코로나19 검사 등에 관한 정보가 있어서 시·구청을 통하면 발급이 쉬운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의료뿐만 아니라 IT 등 인프라가 전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백신전자여권 발급과 운영은 현재 바로 실행이 가능하다.

선결 과제는 기존 전자여권에 백신·코로나19 등과 관련된 정보를 추가하기 위해 ICAO 표준을 수정·증보해야 한다. 또 백신에 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백신·코로나19 검사 등 정보는 모두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보안성을 유지해서 사생활 침해를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표준과 정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이기한 서울여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knight@sw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