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국내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본격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19개 글로벌 정보기술(IT) 및 자동차 업체 CEO와 반도체 영상회의를 진행하면서 '인프라'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기업인 인텔과 더불어 삼성전자, TSMC 등 대형 반도체 기업을 현지로 끌어들여 반도체 패권을 가져오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값싼 인건비가 보장돼야 하는 반도체 후공정 시장도 미국의 공급망(SCM) 내에 갖춰질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열린 반도체 영상회의에서 특정 업체를 거론하거나 파격적인 반도체 투자 전략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방점을 두겠다는 그의 계획은 분명했다. 지난 2월 반도체 공급망 재편 행정명령 서명 당시 칩을 집어 들었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웨이퍼를 들어보였다. 그는 “이것은 인프라다. 우리는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GM 등 현지 자동차 생산 라인이 멈춘 사례, 아시아 지역에 반도체 생산 설비 80%가 몰려 생산 불균형이 초래되는 현상 등을 타개하기 위해 아예 새로운 인프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 기조에 따라 후속 조치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칩스(CHIPS)'라는 초당적 법안을 만들고 500억달러(약 56조원)를 반도체 제조와 기술 연구에 사용하기로 했다.
또 정부 기조에 화답해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에 나선 인텔은 회의 직후 6~9개월 내 반도체 설계 업체와 협력해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요한 화두는 자국 기업이 아닌 외국 대형 기업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이번 회의에 삼성전자, 대만 TSMC, 네덜란드 NXP 등을 초청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칩 생산이 가능한 외국 기업 유치에 집중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 듀폰 등 세계 굴지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인텔, AMD, 엔비디아 등 세계적 칩 설계 기업을 보유한 미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소부장 생태계 조성보다는 '칩 출하량 증가'를 책임질 외국 기업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는 전문가 진단이다.
따라서 앞으로 삼성전자, TSMC 등 파운드리 업체에 어떤 유인책으로 팹 투자를 끌어들일지가 주목된다.
또 향후 바이든 정부가 미국 오스틴 팹 증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삼성전자를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약 20조원 투자 규모가 예상되는 오스틴 신축 공장에 미국 정부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삼성전자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도 모든 반도체 SCM을 미국 내로 흡수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값싼 인력 시장, 각종 IT 기기 조립 업체가 아시아 지역에 몰려있는 것을 고려하면 반도체 패키징을 담당하는 후공정 시장 구조를 미국으로 품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예로 미국에 본사를 소재한 세계적인 반도체 패키징 업체 앰코테크놀로지도 10곳의 생산 설비 모두 아시아에 위치해 있다.
한 반도체 장비 업계 대표는 “전공정은 거의 무인화 수준이지만 후공정은 수작업이 필요한 작업이 많아 값싼 인건비가 보장돼야 한다”며 “반도체 사업의 공정별 특성상 미국 내 전체 반도체 SCM 구축은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