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주요 경제부처 장관, 청와대 참모진까지 대거 교체한 데에는 지지율 하락에 따른 '레임덕' 위기와 역대 최악의 고용률을 기록 중인 현 민생경제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경제 부문에서 '리스크' 관리에 나선 셈이다.
문 대통령은 올 들어 수출 등 경제 상황이 나아지고 있음에도 고용률을 비롯한 체감 경기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 취업자는 100만명 가량 감소하는 등 최악의 고용 충격이 벌어졌다. 외환위기 시절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실업자도 처음으로 150만명을 넘어섰다. 고용률과 실업률은 정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조치와 공공행정 부문 일자리 증가 등의 요인으로 2월과 3월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위기 상황이라는 게 문 대통령 판단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기업에 '투자'와 '채용'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면서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경제부처 장관 후보자를 정통관료, 또는 학계·업계에서 해당 산업 분야 전문가로 발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후보자는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관료 출신으로 채워졌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 후보자는 산업부에서 산업과 무역, 에너지 분야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한 실물경제 전문가다. 반도체 대란 등 주요 산업 이슈에서의 발 빠른 대응은 물론, 현 정부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등 에너지 부문 정책의 안정된 마무리를 위한 인사로 풀이된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 후보자는 노사관계 및 노동 정책 전문가다. 현 정부 스탠스가 친기업 정책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노동계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인사라는 평가다. 안 후보자는 고용부에서도 줄곧 노동 관련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선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탄력근로제와 같은 노사 갈등 봉합에 전문성을 발휘한 바 있다.
관심을 모았던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는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이 선택됐다. 현 정부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정책에서의 구원투수로, 주거안정 실현을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짊어지게 됐다. 다만 국토부 내부에선 장관 후보자가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발탁되면서 씁쓸하다는 반응도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국토부도 '적폐'로 비춰진 것 아니냐는 우려감도 팽배하다. 노형욱 후보자는 “국민의 주거안정, 부동산투기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지명 소감을 밝혔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해수부에서 해양, 수산, 물류 분야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우리나라 해양수산 정책 수립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세계 1위를 탈환한 조선업 부흥 등 해양산업 재건 및 관련 기업과의 소통을 위한 카드로 읽힌다.
이번 경제부처 장관 개각에서 유일한 여성이자, 비 관료 출신으로 이름을 올린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도 정통관료 출신 못지 않은 과학기술·정보통신 전문가다. 주로 과학기술 연구개발(R&D) 분야에 몸 담았지만, 전공분야는 초고속 통신이다. 세계적 권위의 미국 벨 연구소와 시스코 등 기업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전략 수립에서 기업과의 시너지가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부처 개각 특징은 레임덕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여당 정치인이 아닌 관료로 후보자를 채웠다는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시점에서 뒤늦게 관료 출신 등 산업 전문가를 중용했다는 것은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해진 정세균 국무총리 후임에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앉힌 것도 지지율 하락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카드로 읽혀진다.
한국갤럽이 지난 16일 발표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역대 최저인 30%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도 6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긍정평가 30%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율(31%)보다 낮은 수치다. 한국갤럽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김 후보자에 대한 문 대통령 지명과 관련 '통합형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지역구도 극복과 사회 개혁, 국민 화합을 이뤄낼 적임자로 판단했다. 내년 대선은 물론,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카드로 풀이되는 지점이다.
유 실장은 또 “균형감 있는 정무 감각과 소통 능력”도 김 후보자 장점으로 꼽았다. 야당은 물론이고 부동산 등 일부 정책에서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기 시작한 여당과의 소통에도 중점을 둔 모양새다. 임기 말 불거질 수 있는 당정청 갈등을 봉합하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1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 첫 출근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