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국 게임의 약진이 다시 시작됐다. 26일 구글플레이 매출 상위 100개 중 43개가 중국게임이다. 이 가운데 4월 한 달간 매출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게임은 '기적의 검', '라이즈 오브 킹덤스' '원신' '삼국지 전략판' '원펀맨:최강의 남자' 다섯개로 절반을 차지했다. 삼국지 전략판과 원펀맨은 출시와 동시에 톱10에 진입했다.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인해전술'처럼 중국 게임이 끝도 없이 몰려든다”며 “최근에는 질적 경쟁력도 갖췄기 때문에 안방 사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국산 게임 7개가 매출 10위권에 들었다. 100위권 내 중국 게임은 29개였다. 2018년 이후 가속화된 중국 게임의 공세를 국내 게임사가 방어해 안방 경쟁력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반년이 채 못돼 상황이 바뀌었다. 불공정 무역과 문화공정 시도를 규탄하며 중국 게임을 거부하던 이용자마저 국산 게임에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최근 국산 게임의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과 독불장군식 운영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영향이 크다. 한국 게임 못지 않은 중국 게임의 질적 향상이 대작, 다양한 장르의 강점을 배가했다.
중국 게임이 맹위를 떨치던 2018~2019년에는 선정적인 광고와 먹튀, '페이 투 윈(과금 규모가 높아질 수록 이길 확률도 높아지는 구조)' 비즈니스 모델(BM)로 비난을 받았다. 국내 이용자의 반감도 컸다.
지금은 다르다. 법제와 여부와 과도하게 낮은 확률로 논란을 겪고 있는 한국 게임과 달리 확률형 아이템 관련 제도 틀이 잡혀있는 덕에 평가가 좋아졌다.
중국은 자국 게임에 확률 정보 공시를 강제화했다. 무작위로 선정된 이용자의 확률형 아이템 추출 결과를 공시하고 그 기록을 의무적으로 보관한다. 한국 자율규제 강령과 표기, 공지 방법이 달라 미준수 게임으로 분류되는 예도 있지만 규모 있는 게임은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작년 세계 모바일 게임 매출 1위를 기록한 '원신'의 경우 개인별 획득 기록을 공시한다. 각 이용자가 자신의 표본을 모아 확률을 검증할 수 있다. 몇몇 개발자가 이용자 확률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할 정도로 데이터 공개가 잘 이뤄진다.
국내 게임사는 회사마다 검증 부서가 있음에도 데이터 공개를 꺼린다. 획득 기록을 제공하는 게임은 드물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의해 '캡슐형' 아이템 획득 확률과 구성 정도만 공개한다.
이용자가 확률 조작을 의심해 수천만원 사비를 들여 제한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조작 의심사례가 실제 조작으로 드러난 경우가 있어 불신은 커지고 있다. 불신의 벽이 높다 보니 게임사가 실제 로그를 공개해도 “이게 정말 맞는지 의심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공산당 입맛에 맞는 게임에만 판호를 주겠다는 움직임은 국내 게임사를 부담스럽게 한다.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게임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국내에 퍼질 위험성 때문이다. 중국음향디지털출판협회 게임 공작 위원회와 중국 게임산업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게임 해외매출은 작년 1분기 37억8100만달러에서 4분기 연속 성장해 올해 1분기 40억6400만달러로 증가했다. 중국 게임의 국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게임을 통해서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지는 일도 있다. '저니' '스카이:빛의 아이들'로 유명한 개발사 댓게임컴퍼니는 스카이:빛의 아이들 업데이트에 한국식 갓을 추가했다. 이 회사는 중국계 대표가 이끄는 미국 회사다.
게임에 추가된 갓은 '모자'와 얼굴을 가리는 차양 '양태' 구분이 확실한 한국식 갓이다. 갓 끈까지 존재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갓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서양인에게 널리 알려진 영향이다. 갓은 '킹덤 햇(kingdom hat)'이란 단어로 한국 문화가 관심받는데 일조했다. 흑립, 초립, 패랭이 같은 평량자형 갓이 아마존, 이베이 등지에서 판매됐다.
하지만 중국 이용자가 갓을 한국 의복으로 규정한 것을 비판하자 회사는 즉각 갓을 중국 명나라 의복으로 수정했다. 제노바 첸 댓게임컴퍼니 대표는 “내가 중국 사람이라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명나라 모자가 이번 디자인 영감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저니와 스카이:빛의 아이들로 인디게임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상기록을 세운 댓게임즈컴퍼니의 발언과 설정에 동아시아 문화를 잘 모르는 서양 이용자는 갓을 명나라 의복으로 인지하기에 이르렀다.
게임사 관계자는 “왜곡 요소가 있는 게임이 국내에 유입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퍼진다면 게임산업은 문화공정을 불러들인 장본인으로 손가락질받게 된다”며 “확률형 아이템으로 잃어버린 신뢰가 중국 게임 영향력 상승으로 연결돼 결과적으로 역사왜곡으로 이어지는 것은 국내 업체 입장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