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선전부가 최근 새롭게 판호 발급 심사 기준을 발표했다.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에 부합한다' '중국의 우수 문화를 널리알린다'와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40조원에 달하는 게임시장을 가진 중국이 자국 게임 시장을 문화공정의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다.
'게임 심사 평점 세부규칙'이라고 명명된 새로운 기준은 독창성, 품질, 지도 방향성, 문화함양, 완성도 다섯 개 분야에 걸쳐 게임을 심사한다. 최고 점수는 5성(점)이다. 평균 3점 이상을 받아야 내자판호를 받을 수 있다. 하나라도 0점이 있으면 유통이 허가되지 않는다.
지도방향에는 정확한 역사관,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육성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화함양 부분은 해당 게임이 중국의 우수한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지를 심사한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샤이닝 니키' 사태 때 중국 개발사 페이퍼게임즈가 취했던 입장과 일치한다. 페이퍼 게임즈는 작년 10월 샤이닝 한국 서비스를 기념해 게임 내 한복 아이템을 추가했다. 샤이닝 니키는 스타일링 게임이다. 주인공 니키가 다양한 옷을 입고 다른 플레이어와 대결하는 내용으로 옷이 주요 콘텐츠다.
한복이 추가되자 중국 SNS를 중심으로 한복이 아니라 중국 고유 의상인 '한푸'라는 주장이 나왔다. 페이퍼게임즈는 이를 받아들여 출시 하루 만에 한복 아이템을 삭제했다. 한국 이용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으려고 하자 페이퍼게임즈는 “중국 기업으로서 우리의 입장은 항상 조국과 일치한다”며 “중국의 전통과 국가 존엄을 지키고 이를 모욕하는 행위를 단호히 배격할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리고는 게임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면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작성한 글을 첨부했다. '한복의 의관 제도는 모두 중국과 같다'는 내용이다. 공청단은 중국공산당 내 3대 파벌로 꼽힌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현 총리가 공청단 출신이다.
2016년 아이러브 니키를 국내에 선보인 페이퍼게임즈는 수많은 국가의 전통 의상을 수집하고 연구해온 곳이다. 전작에서도 한복 의상을 꾸준히 제작했다.
시가총액 800조원의 텐센트도, 세계 최대 전자쇼핑몰을 가진 알리바바도 중국 공산당 결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페이퍼 게임즈가 중국 정부 눈치를 봤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논란 속에 페이퍼게임즈는 설립 2년 반 만인 지난해 한국법인을 청산했다.
중국은 2000년대 초에도 동북공정 작업을 실행하면서 우리 고대사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게임을 이용한 전력이 있다. 변변한 개발 능력이 없었음에도 왜곡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데 주력했다. 소프트월드가 2003년 출시한 '한나라와 로마'는 고구려를 야만적이고 악한 민족국가로 표현됐다. 이 게임은 2003년 타이페이게임쇼(TGS)에서 RTS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국수적이고 편협한 왜곡된 역사관이 한국 고대사를 모르는 해외 이용자에게 그대로 각인됐다.
윤원호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국내외에서 생산 판매되는 컴퓨터 게임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한 실태를 파악해 정부 차원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다.
'설가장'도 고구려를 악의 소굴로 그렸다. 고구려 섬멸이 게임의 목표로 설정돼 있다. '환상 삼국지'는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 응원단의 상징이었던 치우천왕을 악마로 묘사했다.
국내 업체가 개발한 '시아'는 중국에 수출되면서 역사왜곡 도구로 쓰였다. 본래 무림의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와 무림연맹의 대결을 그린 무협 게임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배달국의 치우천왕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는 이야기로 각색됐다. 치우천왕은 악마에게 현혹돼 전쟁을 일으키는 악의 화신으로 묘사했다.
중국은 잘못된 역사관을 주입하는 동시에 티베트와 신장지역을 독립국으로 묘사한 스웨덴 페러독스의 '하트 오브 아이언'의 수입을 금지했다. 게임 CD를 몰수하는 등의 강경 조처를 취했다.
이 같은 방향성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홍콩' '타이완' '티베트' '코로나' 등 중국과 정치·국제적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를 채팅창에 칠 수 없는 게임이 존재한다. 게임을 선전도구로 인지하는 중국 정부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전상후 게임평론가는 “일본 코에이가 만든 게임으로 삼국지 등장인물 외모에 대한 인식이 굳어지는 것처럼 게임은 인식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며 “중국 정부가 시도하는 문화공정이 게임, SNS를 통해 퍼지면서 중국 젊은 세대가 사실로 인지하고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