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대기업이 폐플라스틱, 고철 등 재활용 업체를 잇달아 인수하며 관련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SK, 보광, 동서 등 대기업 계열사가 폐기물 처리·재활용 시장에 속속 뛰어들었다. 폐기물 사업장 인수를 타진하는 대기업도 늘고 있다. 건설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석유화학업계를 거쳐 여러 업종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SK건설은 지난해 국내 최대 폐기물 처리 기업 EMC홀딩스를 1조원에 인수하며 친환경 사업에 진출했다. 추가로 지역 소규모 폐플라스틱 업체에 연이어 인수 제안을 넣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광산업은 인천 부지에 재활용 장비를 대규모로 증설한 데 이어 경기 화성에 추가 부지를 조성하고 있다. IS동서는 건설 폐기물 처리업체 인선이엔티, 폐기물 소각업체 코엔텍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이 외에 대기업 다수가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소규모 재활용 업체의 인수합병(M&A)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모펀드(PEF)도 폐기물 처리·재활용 업체를 주요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다. 외국계 PEF는 물론 IMM인베스트먼트, 한앤컴퍼니 등도 폐기물 처리업체를 이미 다수 매물로 확보하고 있다. 대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심이 커진 지금이 매도 적기라는 평이 적지 않다. IB업계 관계자는 2일 “ESG를 강조하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재활용'을 명확한 주력 투자 분야로 보고 있다”면서 “대기업 수요가 큰 데다 혐오사업이라며 승계를 원하지 않는 2~3세도 많아서 상대적으로 M&A가 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폐기물 사업장은 인수 후 투자 시 개발 성과도 좋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최근 강조되는 ESG 경영이 대기업 재활용시장 진출의 배경이다. 특히 폐플라스틱 재활용이 주목받고 있다. 플라스틱 용기 자체를 재생 원료로 재활용하거나 화학적으로 재처리해 연료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원순환단체총연맹 관계자는 “지역업체와 친환경 소재를 만들기로 한 대기업이 올해 갑자기 사업장 인수로 방향을 바꿔 제안하고 있다”면서 “ESG 경영을 앞세운 대기업의 재활용 시장 직접 진출에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영세 재활용업계의 반발도 감지된다. 무분별한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한 단체 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중심으로 정부에 상생협력 방안 마련을 촉구할 방침이다. 대기업 사업 확장에 위기감을 느낀 중소 재활용업계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요구 등으로 맞서고 있다. 재계의 ESG 경영 확산이 고물상으로 불똥이 튄 격이다. 현재 56개 재활용 단체 대상으로 대기업 진출에 따른 피해 현황을 집계하고 있다. 폐플라스틱뿐만 아니라 고철 수거, 건축·해양폐기물 등 재활용업계 전반으로 갈등이 확산할 소지가 크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대기업의 ESG 경영 확산이 오히려 협력 업체나 영세기업에 위험 요소로 작용하면 안 된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ESG 경영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