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지식재산보호도 세계 5강으로

김용래 특허청장
김용래 특허청장

올해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사상 처음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투자 규모 측면에서 세계 5번째,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 비중으로는 세계 1위 수준이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특허 등 지식재산권 출원 건수는 55만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특허출원은 22만여 건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이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특허출원이 모두 감소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우리 기업이 첨단기술을 선점해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기술 혁신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 혁신 노력과 달리 지식재산 보호 수준은 취약하다. 2020년 스위스 IMD가 국제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지식재산 보호 정도'는 전체 63개국 가운데 38위로 하위권이다. 5년 동안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로 인한 피해액은 20조원으로 추정되며,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 피해액도 4000억원으로 조사됐다. 최근 LG와 SK의 영업비밀 분쟁 사례와 같이 국내 기업끼리의 분쟁이 국내보다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제도를 갖춘 해외에서 늘고 있다. 미국에서 우리 기업 사이의 지식재산 소송은 2015년 2건에서 2016년 4건, 2019년 8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차세대 통신,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차지하기 위한 국가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기술의 안보화, 우방국 간 기술동맹,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자국이 보유한 지식재산이 곧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행사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우리나라의 보호 수준으로는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국제적인 기술경쟁력 확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 어렵게 얻은 지식재산이 쉽게 침해된다는 불안감이 크면 아무도 기술혁신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 R&D 100조원 시대에 걸맞은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도 지식재산 보호에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지식재산 침해의 손해배상액을 대폭 높이고자 징벌성배상제도를 도입하고, 기본 손해액의 산정 방식도 합리적으로 개선했다. 특허청의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기존에 상표 수사에서 특허, 영업비밀, 디자인까지 확대했다. 디지털경제 시대에 걸맞게 화상디자인, 빅데이터, 인공지능(AI)에 의한 발명 등 새로운 형태의 지식재산에 대한 보호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송 과정에서 권리자가 침해 입증과 손해액 산정을 위한 증거를 제대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제도가 도입되면 침해자가 고의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제출을 거부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져서 우리나라 지식재산 보호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올해 4월 말에 시행된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범부처가 참여하는 국가 차원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5개년 기본계획'이 올해 처음으로 수립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식재산 보호시스템을 디지털 환경과 국제적 수준에 맞도록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위해 산업계, 학계, 법조계 등 30여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기본계획 수립 추진단'도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특허출원 기준 세계 4위이자 지식재산 선진 5개국의 일원이다. 올해 최초로 수립되는 범정부 차원의 기본계획이 우리 지식재산 보호 수준도 세계 5강으로 도약하게 하는 기틀이 되고, 지식재산 창출·보호·활용의 선순환 구조 정착에 크게 기여해 주기를 기대한다.

김용래 특허청장 yrkim0725@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