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급부족 사태 종착점이 보인다. 작동을 멈췄던 공급망이 점차 살아나는 분위기다. 물론 시장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여전히 자동차 등 일부 제조업체는 생산라인 감축을 선언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반도체와 파운드리 업계 동향을 종합해 보면 청신호는 빈말이 아니다. 역시 중심에는 대만 TSMC가 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최근 미국 CBS방송 '60분'에 출연해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에 대응 가능한 시점을 6월 말이라고 강조했다. 내달 하순 정도면 자동차용 반도체 최소 수요를 맞출 것이라고 자신했다.
TSMC는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시장 57%를 기록한 압도적 파운드리 1위 업체다. 세계 반도체 공급량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표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회장이 공개적으로 6월을 특정할 정도면 자신감으로 봐야 한다. 앞서 TSMC는 수요파악을 위해 중간 공급망을 건너뛰고 '최종' 수요업체를 대상으로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수요예측을 끝냈다는 이야기다. 연이은 제조업체 생산중단도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가동을 멈춘 기업에는 안타깝지만 반대로 다른 기업은 부품수급에 숨통을 터 줬다. 일부 기업의 '의도치 않은 희생'이 결과적으로 전체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셈이다.
정부 노력도 주효했다. 자동차와 같은 소비재 제품이 무너진다면 시장에 주는 후폭풍이 크다. 그렇다고 정부가 뛰어든다고 해결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수요와 공급은 시장에 맡겨 두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정부가 경고를 주면서 빠르게 시장 기능을 정상화했다.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 품귀 사태는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용 반도체가 가장 심각했다. 따져보면 지난해 중반부터 징조가 보였다. 차량용 반도체가 결정타였지만 이미 모든 세트 분야에 걸쳐 쇼티지가 감지됐다. 이를 증권가에서는 '슈퍼 사이클'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예상치 못한 수요가 공급을 견인했다. 한마디로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이다. '펜트 업'이라 불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억눌린 수요 즉 '보복수요'가 폭발하면서 소비가 요동쳤다. 그래도 감당할 수준이었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화웨이를 시작으로 미중 갈등으로 중국 제재가 최고조로 치달았다. 제재 시한이 임박할수록 반도체 사재기가 불가피했고 시장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최대 생산공장인 중국 주요업체가 '반도체 싹쓸이'에 나서자 다른 경쟁업체도 긴장 모드로 돌아섰다. 경영학에서는 최소한의 재고가 상식이지만 방법이 없었다. 주요업체가 경쟁적으로 '묻지마 주문'을 넣기 시작했고 결국 쇼티지로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반도체 품귀난의 전모다. 다행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장이 다시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 추세라면 늦어도 3분기 경에는 사태가 진정되고 연말이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찾는 '마켓 스퀘어'에 도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바로 '가수요' 때문이다. 짐작건대 수요와 공급이 균형점을 찾을수록 시장은 다시 홍역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쌓여 있던 재고가 시장에 흘러나오면서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주문량도 감소할 것이다. 이미 반도체와 파운드리 업체는 최대치로 생산량을 올렸을 게 뻔하다. 반도체 품귀는 풀리겠지만 시장은 다시 요동칠 수 있다. 자이로스코프처럼 시장은 균형점을 찾아가게 돼 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다. 다시 반도체 공급과 수급 전략을 정비할 때다. 시장보다 반발 앞서가야 한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