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5월 21일. 계절의 여왕 5월답게 하늘은 티 하나 없는 거울처럼 맑았다. 초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서울 광화문을 오가는 시민의 발걸음에도 활기가 넘쳤다. 이날 광화문 중앙청 건너 국가재건최고 건물(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회의실에서는 제39차 상임위원회가 열렸다. 경제기획원은 이 자리에서 4개월여 만에 작성한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상임위원회에 보고했다. 보고는 전상근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과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이 했다. 전상근 과장은 송요찬 내각수반이자 경제기획원장 대신 참석한 송정범 부원장을 수행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실에는 양 어깨에 번쩍이는 별을 단 최고위원회의 위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육중한 체구에 별 셋을 어깨에 단 이주일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이 입장했다.
이주일 부의장은 좌중을 돌아본 뒤 자리에 앉아 사회봉을 들고 개회를 선언했다. “지금부터 국가재건최고 회의를 개최하겠습니다. 경제기획원에서 입안한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보고해 주세요.” 이 말에 따라 전상근 과장은 심호흡을 한 뒤 회의장 앞으로 나가 4개월여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전상근 과장은 이날 보고를 앞두고 예행 연습을 많이 했다. 보고 차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주요 내용을 최고위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했다. 당시는 요즘처럼 파워포인트(PPT)로 업무보고를 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각 부처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작성한 국가 과학기술 종합 설계도였다. 계획안은 크게 △계획 목표와 방침 △계획 작성의 가정 △계획 작성방법 △기술 현황 △계획 내용 △소요 예산 △참고 도표 등으로 작성됐다. 기본 목표는 1차 기술진흥계획 완수에 필요한 기술인력 자원 확보, 산업 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술 수준의 질적 향상에 뒀다.
핵심 중 핵심인 기술 수준 향상을 위해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과학기술을 총괄할 종합 행정 체제를 확립해야 하며,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세제를 개선하고 과학기술자에 대한 정부 포상 확대와 특허 행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외국의 앞선 기술을 도입하고, 과학기술 분야 국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연구자 해외 파견과 기술협조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전상근 현재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회고록(한국의 과학기술개발)에 실린 증언. “과학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계획안 보고를 시작했다. 인력개발과 산업기술 개발전략, 연구개발 등 중요한 내용을 설명했다. 결론은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국가 장기사업으로 추진해야 하며 이 계획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격으로 투자와 정부 지원 등 모든 면에서 우대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보고 도중에 너무 긴장해서 여러 번 실수를 했다고 한다. 말을 더듬거리거나 내용을 건너뛰기도 했다. 그때마다 송정범 당시 부원장이 나서서 보충 설명을 했다. 5개년 계획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최고위원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좋았다. 위원들은 차례로 계획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수고했어요. 아주 훌륭한 계획입니다.” 표현은 다소 달랐지만 하나같이 계획안에 찬사를 보냈다. 전상근 이사장의 회고. “어느 위원은 '오늘 발표한 기술개발 계획은 국가 발전을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이 계획을 국가 최우선 사업으로 설정해 적극 추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주일 당시 부의장이 최고위원의 발언이 끝나자 말을 시작했다. “이제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기술진흥 5개년 계획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반대는 없습니까. 그러면 전원 만장일치로 이 계획안을 승인하겠습니다. 이상으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경제기획원이 마련한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최우선 국가사업의 하나로 채택해 과학기술 시대로 가는 거대한 항해를 시작했다. 최고권력자의 말 한마디가 국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미래 씨앗이 된 것이다.
<인터뷰>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전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장)
우리나라 첫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입안하고 과학기술처 출범의 산파역을 한 전상근 전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장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1927년생이다. 올해 95살이다. 전화로 만남을 청했더니 흔쾌히 응했다. 응접실 벽에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받은 홍조근정훈장이 걸려 있었다. 나이에 비해 정정했다. 과거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에 홍조가 감돌았다.
경기고와 미국 퍼듀대 화공과를 졸업한 그는 문경시멘트 공장장 등을 거쳐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과장, 기술관리국장, 국립과학관장, 과학기술처 종합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1급으로 10년을 재직했지만 과학기술처 차관 승진에서 잇따라 누락되자 공직생활을 청산했다. 이후 건설업에 뛰어들어 그의 표현을 빌리면 '떼돈'을 벌었다. 지금은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사회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작성한 계기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질문 한마디로 말미암아 작성하게 된 겁니다. 1962년 1월 5일 박정희 의장이 경제기획원을 순시하고 업무계획을 보고 받았어요. 그때는 연초에 대통령이 각 부처를 돌며 그해 업무계획을 보고 받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자리에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보고 받은 박 의장이 “기술 수급에 문제가 없는가”라고 질문했어요. 그때 기술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경제기획원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든 사람은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송정범 부원장이 일어나 임기응변으로 “나중에 별도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고 해서 넘어간 거죠. 이후 기술관리과에서 기술진흥 5개년 계획안 수립 업무를 맡았어요.
-계획안은 어떤 절차를 거쳐 확정했나요.
▲최고 권력자와 한 공개 약속이니 서두를 수밖에 없었지요.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처 간 의견 수렴과 논의를 거쳐 4개월여 만에 국가 우선 사업계획으로 확정했습니다. 계획안을 만드느라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요.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살길은 과학기술 개발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과학이란 용어를 뺐나요.
▲처음 기획안을 만들 당시는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송정범 차관이 이를 보더니 다 좋은데 과학이란 용어를 빼자고 하더군요. 당시 기술 개념이 없던 시절이니 과학은 더 말할 게 없었어요. 기술자를 '쟁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어요. 나중에 과학을 넣어 과학기술이라고 했습니다.
-회고록을 냈는데요.
▲공직생활 관두고 1982년에 처음으로 회고록을 발간했습니다. '한국의 과학기술정책-한 정책 입안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입니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어요. 그 후 책을 찾는 사람이 늘어 2010년 재판(再版)했습니다. 경제기획 재직 중에 재외 공관 대사로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김학렬 당시 운영 차관보(전 경제부총리)가 반대해서 나가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영어를 잘하는 이가 드물었어요.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기술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정해서 추진해야 합니다. 청와대에 능력 있고 유능한 과학기술 특보나 수석비서관을 두고 첨단 과학기술을 남보다 앞서서 개발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현안이 있으면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직접 실무자를 불러 보고를 받고 지시를 했어요. 저도 장·차관보다 박 대통령을 많이 만나 지시를 받고 보고를 했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수시로 현장에 나가 확인을 했어요.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과 열정이 한국과학기술원 설립과 과학기술진흥법 제정, 과학기술처 설립, 해외 우수인력 유치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게 한국 과학의 주춧돌이 됐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요.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