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산업이 부상하면서 많은 인재들이 반도체 전공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대학에서는 이를 수용한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대학 정원 제한으로 많은 학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을 가르칠 교수마저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반도체 계약 학과 등을 신설하지만 산업 현장의 인력 수요에 대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약학과를 포함, 전국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은 20개 학교다. 최근 기업과 협력해 계약 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반도체 전공을 선택하려는 학생도 증가했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원·대학 정원 제한으로 전공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인력을 배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교육부의 2021년도 대학원 정원 조정 및 설치 세부 기준에 따르면, 수도권 소재 대학원·대학은 입학 정원 순증이 불가능하다. 학교가 자체적으로 총 입학 정원 범위 내에서 학과별 상호 조정은 가능하지만, 교육부 사전 심의·승인 등 절차가 까다로워 대대적 변화는 요원하다. 대학원 정원 조정 기준에는 정원 조정 시에도 학과 간 편제 정원, 계열별 교원 1인당 학생 수 차이 등으로 인한 교육 여건이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수도권 소재 한 반도체 관련학과 교수는 “대학 내 자체 조정이라는 게 다른 학과 인원을 줄이고 반도체 학과 인원을 늘리는 방식인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타 학과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학과 정원 조정이 쉽지 않으니 반도체 학과뿐 아니라 반도체 관련 화학·소재·기계 공학 분야에 사람이 몰리기도 한다. 반도체 공정에 다양한 화학·소재·기계 분야 전공 지식이 필요하니 학생 입장에서는 우선 이 전공이라도 선택하려는 취지로 분석된다.
국립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학과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부생뿐 아니라 석사 과정생까지도 우리(재료공학) 학과에 와서 반도체 관련 연구를 하려는 학생이 많다”면서 “반도체 학과 병목 현상으로 다른 관련 학과 학생 모집과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선행돼야 할 교수 확보에도 걸림돌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학원에서 입학 정원을 늘리려면 교원·교사·교지 등 기본 교육 여건을 먼저 갖춰야 한다. 이후에야 정원 확대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학계에서는 마땅한 교수 확보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 교수는 “수십년동안 반도체 교육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만큼 양질의 교수를 데리고 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면서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해외에서 교수를 모셔 와야 할 판인데, 대학이 강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