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엔진음에 폭발적 주파력,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차체까지.
많은 이들이 꿈꾸는 드림카 페라리를 타봤다. 이번 시승 기회가 페라리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내연기관 슈퍼카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연기관에서 모터의 시대로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슈퍼카 대명사 페라리는 현존 내연기관차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제조사다. 페라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페라리는 최근 반도체·전자 전문가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9월부터 페라리를 이끌 새 CEO는 유럽 최대 반도체 제조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출신 베네데토 비냐다. 1929년 창립한 페라리가 자동차 업계 밖에서 CEO를 영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외부 CEO 선임은 전동화 전환 속도를 조절했던 페라리가 급변하는 미래차 시장에 적극 대응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앞서 존 엘칸 페라리 회장은 하이브리드 슈퍼카를 선보인 데 이어 수년 내 강력한 전기 슈퍼카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번 시승차는 페라리 F8 스파이더다. 페라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라 평가받는 8기통 엔진을 장착한 오픈톱 모델 F8 스파이더를 타고 서울과 인제스피디움을 오가며 도심과 고속도로, 서킷을 고루 달려봤다.
F8 스파이더는 기존 F8 트리뷰토의 오픈톱 버전으로 지붕을 열고 달리는 즐거움을 극대화한 모델이다. 전체적 차체 실루엣을 F8 트리뷰토와 공유하면서 페라리 특유의 접이식 하드톱(RHT)을 적용했다. 첫 만남부터 F8 스파이더는 압도적 존재감을 뽐낸다. 페라리를 상징하는 빨간색 차체에 극도로 낮은 차고가 인상적이다.
시동을 걸면 페라리 특유의 우렁찬 엔진음이 운전자를 반긴다. 시동을 비롯해 기어 변속과 방향지시등, 와이퍼 작동 등 모든 차량 제어가 운전대에서 이뤄진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편리하게 느껴졌다. 차체 레이아웃은 미드리어 2인승 방식으로 2명이 탑승할 수 있고 엔진이 탑승석 바로 뒤에 자리한 구조다. 공차중량은 1645㎏으로 앞 41.5%, 뒤 58.5%의 무게 배분을 이뤘다.
뒤쪽에 자리한 엔진은 4년 연속 올해의 엔진상을 받을 만큼 명기로 불린다. V8 4.0ℓ 터보 가솔린 엔진은 엔진 회전수 8000rpm에서 최고출력 720마력, 3250rpm에서 최대토크 78.5㎏·m를 뿜어낸다. ℓ당 출력은 185마력 수준으로 역대 페라리 엔진 중 최고 수준 스펙이다.
슈퍼카는 승차감이 좋지 않을 것이란 건 편견이다. 예상보다 도심에서도 편안한 주행이 가능했다.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부드럽게 속도를 높인다. 전고가 1200㎜에 불과해 시트 포지션이 굉장히 낮은 편이나 주행이 불편하진 않다. 톡톡 튀는 외관 탓에 차선 변경 시 주변 차량이 더 잘 배려해주기도 한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속도를 높여봤다. 페달을 밟으면 즉각적 가속 반응을 보여준다. 레이스와 스포츠, 웻 세 가지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일상 주행에선 스포츠 모드만으로도 거의 모든 도로 상황을 소화할 수 있다. 출력이 높아 다루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도 편견이다. 무리한 주행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독일 브랜드의 고성능차보다 오히려 고속 안정감이 뛰어나다.
한적한 국도로 빠져 지붕을 열었다. 페라리가 개발한 접이식 하드톱은 닫았을 때 쿠페의 모습을, 열었을 때 완벽한 스파이더의 모습을 연출한다. 하드톱은 45㎞/h 이하 속도에서 14초 만에 열린다. 공기 역학 설계 덕분에 지붕을 열고 달려도 바람 소리가 거슬리지 않는다.
목적지 인제스피디움에 도착했다. 총길이 3.9㎞의 인제 트랙은 오리막과 내리막 경사가 심하고 11개의 우측 코너, 8개의 좌측 코너가 자리했다. F8 스파이더 최고 성능을 끌어내기에 최적의 장소다.
F8 스파이더 진가는 트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스트럭터 지시에 따라 레이스 모드로 설정을 바꾸고 가속을 시작했다. 넉넉한 힘은 균형 잡힌 차체와 조화를 이뤄 매끄럽게 속도를 높인다. 트랙을 공략하는 능력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예상보다 높은 속도로 코너에 진입해도 빠르고 안정적으로 돌아나간다.
코너를 돌 때 트랙에서 발생하는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운전대를 돌린 각도보다 회전반경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언더스티어, 오버스티어 현상 역시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운전을 이렇게 잘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마지막 코너를 탈출한 후 직선 구간에서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순식간에 200㎞/h를 넘길 수 있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 시간은 100㎞/h까지 2.9초, 200㎞/h까지 8.2초면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340㎞/h에 이른다. 빠른 가속력만큼 브레이크를 밟으면 속도도 금세 즐어든다.
사소한 불편도 있다. 운전에 집중하라는 의미겠으나 별도 거치대 없이 마땅히 휴대폰을 둘 공간이 없었다. 무선 충전 등도 지원하지 않았다. 복합 연비 5.6㎞/ℓ, 기본 가격은 3억9700만원부터 시작한다. F8 스파이더를 소유하려면 주문 후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