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혁신과 상생이 가장 큰 딜레마”라면서 전통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벤처·스타트업이 저마다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고 역설했다. 신기술을 도입해 산업생태계를 바꾸는 혁신을 더욱 권장하면서도 전통산업 종사자의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것이 권 장관의 고민이다.
지난 2월 취임 이후 현장 행보에 집중한 것도 혁신과 상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다. 상반기에는 상생결제 등 어음제도 개편 방안, 자상한기업 지정, 손실보상법 제정 등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협력 중소기업의 상생 방안 마련에 집중했다. 이번 인터뷰 역시 지난 2일 권 장관이 상생결제 우수기업 LG전자를 방문한 직후 이뤄졌다.
권 장관은 하반기부터는 제2벤처붐을 뒷받침하기 위한 스톡옵션 제도 개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지원 확대 등 혁신 기반 마련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도 “모든 산업은 소부장으로부터 출발한다”면서 국내 소부장 기업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국민이 모두 함께 나서 준 덕분에 우리 내부의 소부장 생태계가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상생결제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니 어땠나.
▲LG전자에서 유독 상생결제가 잘 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업 비밀 문제 같은 이유로 1차 협력사까지만 되고, 2차 협력사로 내려가면 상생결제가 잘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LG전자는 다르더라. LG전자 1차 협력사가 먼저 다른 협력사가 상생결제로 대금 지급을 하지 않으면 협력사 회의에 참석을 시켜주기 않더라. 물론 LG전자에서 어느 정도 가산점을 주는 부분이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상생이라는 기업 문화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확실히 칭찬할 만한 일이다.
-상생결제가 결국 약속어음 폐지라는 공약과도 일맥상통한다.
▲종이어음은 이미 많이 없어지는 추세다. 거의 대부분이 전자어음으로 전환되고 있다. 약속어음 폐지 공약은 사실상 실현 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매출채권 팩토링 사업을 정식 예산으로 편성해 시행할 계획이다. 상환청구권이 없어서 결정적으로 어음 사용 관행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인 만큼 처음에는 규모가 조금 작더라도 제도를 탄탄하게 만들어서 실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약속어음도 대체될 것으로 본다.
-공공부문으로 상생결제 확대 방법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e호조(지방재정관리시스템)로 1차 협력사까지 최대한 상생결제를 하면 60조원 가까이 대금 지급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물론 법으로 강제는 아니라서 독려가 필요하다. 지방정부에 인센티브 주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어느 시점부터는 제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2차 이하 협력사에까지 어떻게 상생결제를 확산하느냐가 핵심이다. 지금 2차 이하 협력사에 대한 민간 지급 비중은 2% 정도다. 목표를 5% 수준까지 높여 잡을 계획이다. 결국 지자체 의지에 달려 있다. 공공부문에서 3~4차 협력사까지 가는 것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차 협력사까지만 확산해도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도 연관이 있나.
▲사실 상생결제가 ESG의 '끝판왕'이다. 결국 돈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제가 이뤄지면 연쇄부도도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거래 관행이 상생결제를 중심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거래가 훨씬 투명해지고 맑아질 것이다. 갑을 관계로 묶인 거래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강매도 없어질 수 있다. 우선 공공영역에서 모범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의무화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도 문제지만 타다, 강남언니, 로톡 같은 온·오프라인연계(O2O) 플랫폼과 전통기업간 갈등에 따른 상생도 화두다.
▲사실 그 부분이 진짜 딜레마다. 의료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결국 플랫폼 중심으로 산업이 갈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스타트업이 아직 작을 때는 문제점이 생겨도 막기 힘들다. 막는 것이 맞지도 않다고 본다.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플랫폼이 규모가 커질 때는 적절한 제약이 필요다. 지금도 중소기업일 때는 혜택을 주지만 중견·대기업이 될수록 혜택은 줄고 제약이 늘어난다. 같은 이치로 봐야 한다. 플랫폼이 처음에는 싸게 팔다가 나중에 사람이 많아지면 수수료를 올려서 문제가 된다. 이제 그러면 제재를 해야 하는데, 언제부터 제재해야 할지 이런 부분이 정말 어려운 지점이다.
-해결 방안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영업하거나 산업 생태계가 새롭게 짜여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다. 새로운 업체와 새로운 영업 방식이 생기면서 전통산업이 위협받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산업에 기존 산업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적응이 어려운 기업은 재교육이나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완전히 디지털화돼서 어쩔 수 없는 산업이라면 고도의 디지털 기술이 필요 없는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책의 일이다.
언젠가는 신산업도 구산업이 되고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거기에 맞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과 상생이 딜레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수요를 창출하지 않으면 전체 산업이 내려앉을 수 있다. 과거 방식 유지해서는 버틸 재간이 없다.
규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의 경우 플랫폼 기업과 소상공인 단체가 상생협의회에서 상생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사례처럼 플랫폼과 전통기업 간 갈등 해결을 위해서 동반성장위원회 등 민간기구가 포함된 상생협의회를 구성해 갈등을 조정하고 상생협력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손실보상제가 국회를 통과했다. 추경으로 배정된 금액이 다소 적다는 시각이 있다.
▲추경에 담긴 6000억원은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정도를 예상한 금액이다. 순수 예상치다. 아주 적지만은 않다. 물론 하반기 행정명령이 어떻게 내려질지 가늠할 수 없다. 예컨대 8월 이후에 집합금지가 풀린다면 손실보상으로 지급되는 금액은 없어지는 셈이다. 9월 이후 10~12월 손실보상 규모는 내년도 본예산에 담길 예정이다. 9월 이후 코로나19 확산 여부를 보고 내년 본예산에 담길 예산 규모도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소급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소급 적용이라는 표현에 대해 다시 한번 살필 필요가 있다. 그간 정부가 소급 적용을 안 했다고 하면 그건 사실과 다르다. 정부는 재난지원금이라는 방식으로 소급 적용을 했다고 봐야 한다. 야권에서는 손실보상이라는 틀로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실보상 방식으로 소급 적용하면 결국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적용 대상의 70~80%는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대상자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소급 적용에 따른 시간 역시 오래 걸린다. 그래서 정부는 재난지원금 방식으로 소급 적용을 해왔다. 적절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이번 법은 향후 벌어지는 손해에 대해서는 손실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동의했다고 본다.
손해를 많이 본 사람에게 보다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일각의 주장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복지제도 설계 자체를 완전히 다시 만들어야 한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같은 피해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체력이 약한 사람은 더 힘들다. 힘든 분들에게 조금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재난지원금 방식이다. 이미 소급이 이뤄졌고, 지금도 하고 있다.
네 차례 지원이 있었다. 이런 소급 적용을 손실보상 방식으로 추진했다면 아직도 다투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불만이 있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 관점에서는 재난지원금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타당했다고 본다.
-제2 벤처붐 지속을 위한 큰 구상이 있다면.
▲제2 벤처붐 뒷받침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일이 많다. 가장 먼저 스톡옵션 개선이다. 지금 비과세 한도 3000만원으로 돼 있는 것을 1억원까지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도 과세하는 방법을 현금이 아니라 물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상당히 진척됐다. 스톡옵션 행사 시 근로소득으로 잡히는 부분도 양도소득으로 잡히도록 변경한다면 세부담을 줄일 수 있다. 장기 재직한 근로자에게는 더욱 많은 혜택을 주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다양한 투자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인수합병(M&A) 전문펀드도 많이 만들 생각이다. 신생 벤처기업이 커지고 업력이 늘어나면서 회수시장도 커졌다. 회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세컨더리펀드나 출자자(LP)지분 유동화펀드 등을 많이 만들 것이다. 모태 자펀드 가운데 좋은 성과로 청산한 펀드가 많다. 상당 부분을 M&A펀드로 돌려서 시장이 살아나게끔 할 생각이다.
-복수의결권 제도가 아직 국회 통과를 못했다.
▲복수의결권은 제도를 만드는데 의미가 있다. 비상장 벤처기업이 아니면 대상이 아닌 만큼 큰 우려는 없다. 일부에서는 이 제도를 근거로 대기업 자본이 더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지만, 걱정이 다소 이르다고 본다. 환경이 새롭게 바뀌는데 제도 자체가 없다는 것은 문제다. 제도를 악용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다. 그들이 무서워서 제도의 선한 영향력을 전부 덮어버리는 것은 정책 담당자로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미 청년 창업 활성화 대책도 발표했고, 벤처·스타트업이 한국경제 주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벤처붐이 지속될 수 있도록 추가 보완대책을 준비하겠다. 벤처·스타트업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신이 난다.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위기가 올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결국 기술자립을 이뤘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벌어지던 당시 국회 일본 특위에 있었다. 통상분과 간사였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일본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았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 '다시는 지지 않습니다'라면서 정부 입장이 정리됐다. 마침 동시다발로 국민들도 일본상품 불매에 나서줬고 대·중소기업 협업체계도 너무 잘 맞아 돌아갔다. 3박자가 다 맞아 들어간 셈이다. 국민도 산업계도 모두 함께 나섰다. 민관협업이 정말 잘됐다.
그 결과 지금은 신규 벤처투자액이 2019년 전체 비중 가운데 17%였다가 지난해 32%까지 늘었다. 올해 3월에는 35%까지 올라갔다. 소부장에 돈이 몰리니까 연구도 많이 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내 밸류체인이 살아났다. 일본이 만든 무역 분쟁을 계기로 우리 내부의 소부장 생태계가 단단해졌다. 결국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수입선도 다각화됐다. 이제 신규 벤처투자 1등이 바이오, 2등이 소부장 분야다. '모든 산업은 소부장으로부터 출발한다'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소부장 기업들에게 전하고 싶다.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식품포장재 핵심소재 등 수입의존도 높은 소재의 국산화 성공을 확인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소부장 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소부장 전용펀드, 전용 R&D 등 지원을 강화하겠다.
-비대면서비스 바우처 사업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향후 계획은.
▲현재 12만개 이상 수요기업이 바우처를 지원받아 업무의 비대면화·디지털화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비대면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공급기업들의 매출과 고용이 늘고, 투자 유치에도 성공하는 등 성장의 디딤돌을 마련했다. 앞으로 그간 경험을 토대로 사업을 성과 중심으로 전면 개편해 사업 지속가능성을 높일 생각이다. 수요기업 자부담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사업 운영 구조나 바우처 플랫폼 개편도 추진할 계획이다. 바우처 사업을 통해 국내시장에서 검증받은 우수 공급기업이 유니콘으로,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글로벌기업으로 계속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
◇권칠승 중기부 장관은…
△1965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고, 고려대 경제학과 △8·9대 경기도의원 △20·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수석사무부총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