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우리 국민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단연 코로나19일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감염병이 비단 개인 삶뿐 아니라 전 세계 안위와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
인류 역사에서 감염병은 의과학 발전의 촉매가 되기도 했고, 사회 취약한 부분을 해결하는 메신저 역할도 했다. 초기에는 환자와 접촉이 병을 유발한다는 경험적 사실에 근거해 주로 격리 방식으로 대응을 했다. 15세기 베네치아에서 흑사병 확산을 막기 위해 40일(quaranta) 동안 격리를 한 것이 사회적 방역 제도의 시발점이었고, 이 기간에 해당하는 말은 검역(quarantine)의 어원이 됐다.
이후 인류는 감염병 지식을 축적했고 에드윈 채드윅의 위생개혁운동과 같은 다양한 대응 방식을 도입하면서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격리, 방역만으로는 신종플루, 사스와 같은 신종 전염병과 재확산되는 감염병 대응에 한계가 드러났다. 코로나19에서 경험했듯 감염병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성, 병원체와 인체 간 복잡한 상호작용 이해를 통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감염자에 따라 무증상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중증도가 다양하며, 무증상자에서 감염이 확산되는 등 사스나 메르스와 같은 이전의 바이러스 감염병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바이러스 감염병 대응 기술 발전은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이로써 코로나19는 많은 인명 피해에도 백신이라는 강력한 대응수단을 통해 팬데믹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첫 번째 감염병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감염병과 지난 싸움은 결국 다양한 주체와 방법론들이 서로 융합 및 협력을 통해 발전해가는 과정이었다. 특히 기초연구와 임상연구의 연계, 바이오 분야 내에서 협력,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등 타 분야와 융합, 그리고 인문사회과학과 협력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등 광범위한 협력 체계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감염병은 국가적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 중요 문제지만 기업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전형적인 공공 영역이다. 그래서 국가혁신체계(NIS)에서 산·학·연 협력 중심에 서 있는 국책연구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국책연구기관이 감염병 대응의 역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신·변종 감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거나 유행하는 국가의 연구기관과 연계를 통해 조기에 감염병 발생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신종 감염병은 대부분 생태계 파괴를 통해 야생생물과 공존하던 병원체가 인간과 접촉하면서 발생하며, 빈번해진 국제교류 등으로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경향을 보인다. 바이러스 특성, 감염 경로, 변이 정보 등을 신속 파악하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
둘째, 감염병 대응을 위한 국책연구기관 간 목적지향적 융복합 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 감염병 연구는 미생물학, 면역학 등의 전통적인 기초연구도 중요하지만, 학제간 심도 깊은 융합을 통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책연구기관 간 협력 사업비는 전체 공동 및 위탁사업비 중 2.7%인 1762억원에 불과하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서 운영하는 융합연구사업이 있지만 앞으로 국가적인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셋째, 감염병을 분자에서 질환까지 통합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와 임상 연구를 이어주는 전임상 실험 인프라를 확충하고, 중개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임상, 과학기술 및 인문·사회 분야, 국책연구기관과 대학 간에 인력 교류의 유동성을 높일 수 있는 연구지원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개방형 혁신을 위한 공간 확충 등 실질적인 협력환경 조성도 이뤄져야 한다.
넷째, 연구자, 정책결정자, 국민이 모두 감염병 관련 올바른 소식과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상시 운영해 국민소통, 정책연구, 정부정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바이오 분야 빠른 기술혁신 속도에 맞춰 과학적 관점의 합리적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역학정보와 의료정보가 혁신적인 백신, 치료제 개발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제 개선을 위한 논의가 활성화 돼야 한다.
인류역사에서 감염병을 겪지 않은 세대는 있었지만, 감염병을 겪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다가올 미지의 감염병 대응을 위한 준비는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이 감염병과 같은 사회현안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글로벌 이슈에 적극 대응하는 첨병이 되길 기대한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jangskim@kribb.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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