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지만 지구촌이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서부 유럽인 독일과 벨기에는 100년에 한 번 일어날 법한 폭우가 쏟아져 최소 205명이 사망했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베르크에 따르면 독일 대홍수로 인해 재보험사가 지급할 보험금이 20억~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 돈으로 치면 3조원 안팎이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는 이달 18일부터 20일까지 폭우가 내려 지역이 마비되고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흘간 내린 비의 양은 617.1㎜로 이 지역 연평균 강수량에 육박했다. 1951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후 가장 많은 양이다. 정저우 기상국은 사흘 동안 내린 비의 양이 '1천년에 한 번' 내리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북미 캐나다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선 한때 50도에 육박하는 더위로 신음했다. 평년 여름 기온이 20도 안팎이어서 냉방기를 갖추지 않은 캐나다 남서부와 미국 서부 지역 주민들은 최악의 여름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40여일 간 비가 쏟아지면서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하는 홍수로 말미암은 피해를 봤다. 기상전문가는 지구촌에 이처럼 기상이변이 잦아지는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꼽는다. 지난해 폭우도 직접적으로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친 결과로 분석했다. 한·미 기상청 공동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 폭우는 제트 기류까지 방해해 변화를 줬고, 이 변화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부에까지 영향을 미쳐 이례적인 저기압 현상을 낳았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유럽, 미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세 도입이다. EU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해 '탄소국경조정세' 입법안을 공개했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출시를 금지하고 2026년부터 철강 등 역내 수입품에 단계적으로 탄소배출량에 따른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제조업 수출 중심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 경제에는 새로운 장벽이 생긴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말 각국에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물론 준비가 안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산업구조나 시장경제를 불과 10여년 안에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하려면 산업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 정부 방침에 따르면 석탄발전 28기가 2035년까지 사라지고 내연기관차 생산과 판매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철강이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도 탄소중립을 위해 바뀌어야 한다.
당장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정부가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28기를 폐지하면 관련 산업 종사자 1만3600여명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 또 내연기관차 판매가 감소하고 수소·전기차 판매 비중을 늘리면 관련 업계 종사자 34만여명의 일자리도 불안해진다. 철강·화학 업종도 점진적이지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련 업종이 밀집한 지역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산업도시 디트로이트가 2009년 GM 등 자동차 빅3 기업과 함께 몰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이후 도시 전체는 슬럼으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요구할 수는 없다. '지구온난화'를 막지 않으면 지구 전체는 물론 미래세대가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변화에 맞서 산업구조와 체질을 바꾸고, 어려운 점은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맞서 탄소중립을 실천하면서도 새로운 변화에 맞서 이를 극복할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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