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벽두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를 여러 바퀴 돌아 2021년 7월 현재, 인도발 델타 돌연변이 출현과 함께 4차 대유행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교과서에서 봐온 수백만 년 걸린 다윈진화의 시간을 코로나19가 불과 1년 반만에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바이러스 변이 속도만큼이나 빨라졌다. 임상3상이 채 끝나지도 않은 백신 긴급 사용을 허가해 전 세계에 신속한 보급이 이뤄졌다. 대한민국이 이런 긴급재난 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2015년 메르스 창궐시 우린 백신이나 치료제는 물론 진단기술도 없었고, 메르스의 빠른 전파는 방역시스템도 무력화시켰다. 덕분에 감염자 수 세계 2위라는 불명예를 얻어야 했다. 그런 각인효과 때문인지 초기 코로나19 대유행 시 확진자 경로 추적, 드라이브 스루, 신속 방역조치 등 발 빠른 대응은 'K-방역' 신조어가 탄생했을 만큼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는 선진국 키트 수준 이상 월등한 성능을 가져 해외 100여 개국에 수출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의 명성을 드높였다. 하지만 백신 개발은 여전히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신속 진단키트 개발을 가능하게 했지만, '우보백리' 대장정을 요하는 백신개발에는 젬병이다.
이 대장정에 성공하려면 우수 인력과 연구비, 첨단장비 등이 적절한 장소와 시간에 제공돼야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량된 코로나19 진단용 PCR 효소와 프라이머 등은 탁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략 소재에는 취약하다. PCR 반응에 필요한 핵산 원료와 효소 정제장치 등은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평상시 조달은 용이하나 비상시에는 수입이 불가능해 어려움을 겪는다. 2019년 여름, 반도체 핵심 3대 소재에 대한 일본 수출 규제 악몽이 떠오른다.
바이오산업은 사소한 것부터 첨단기술까지 아우르는 복합 종합산업이다.
사소하다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 않는 로우텍(low tech)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아킬레스건 같은 소재나 부품을 말한다. 하이텍(high tech)은 감염병 바이러스 구조 분석을 위한 첨단장비를 포함한다.
빠르게 진화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모든 수준의 전략자원을 가지고 벌이는 시간 싸움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단백질 서브유닛이나 아데노바이러스 활용기술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정확한 백신 설계와 검증은 코로나19 구조를 기반으로 한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 입체구조를 알아야 가능하다.
유럽의 대학, 공공연구소, 방사광가속기가 연합한 구조생물학 기반 iNEXT(infrastructure for NMR, cryo-EM, X-rays for Translational research) 컨소시엄은 유럽연합(EU) '호라이즌 2020' 지원을 받아 시작됐고, 현재 26개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iNEXT-디스커버리로 발전돼 코로나19 대응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류 공통 이슈인 팬데믹 감염병 대응을 위해 첨단 연구장비 인프라와 최신 분석기술을 이용한 코로나19 신약개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이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국가적 재난에 대응해야 하겠다.
팬데믹 감염병 대응 과학기술은 전략소재 개발과 구조기반 첨단장비 인프라 모두 필요하다. 산·학·연·관 역할 분담이 돼야 할 것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은 iNEXT와 비슷한 구조분석 인프라를 한 곳에 갖추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단백질의 발현, 생산, 구조분석까지 가능한 첨단분석 시스템이 KBSI 오창센터에 있다. 고해상도 X-선 구조분석장치, 고자기장 핵자기공명장치, 극저온 전자현미경 등은 이미 운영되고 있고, 내년 도입될 소각 X선 산란장치를 포함하면 입체적 감염병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은 정작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못 본다'는 영화 '관상'의 대사처럼 KBSI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기회 삼아 바이오산업 중흥의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최종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원장 jschoi@kbs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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