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샌드박스 '희망고문' 2년 반…의약품 비대면 판매기 '독자 상용화' 택했다

쓰리알코리아, 화상 투약기 서비스
약사법 해석 놓고 다시 공방 예상

10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약국에 설치된 쓰리알코리아 원격화상 투약기로 소비자가 약사의 상담을 받으며 의약품을 구매하고 있다. 용인(경기)=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10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약국에 설치된 쓰리알코리아 원격화상 투약기로 소비자가 약사의 상담을 받으며 의약품을 구매하고 있다. 용인(경기)=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약국이 문을 닫은 심야 시간이나 휴일에 약국 앞에 설치된 기기로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원격화상 투약기'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2012년 개발 이후 모호한 규제와 약사단체의 반발 장벽을 넘지 못하고 10년 가까이 상용화가 지연된 서비스다.

해당 기업은 지난 2년 동안 기대했던 규제샌드박스 심의가 계속 지연되자 독자 상용화를 택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국민 편익을 높이는 새로운 비대면 서비스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약국 외 의약품 판매를 금지한 약사법의 해석을 두고 다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쓰리알코리아(대표 박인술)는 자체 개발한 원격화상 투약기를 지난 9일부터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자이약국에서 운영했다고 밝혔다.

화상 투약기는 약국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대에 국민의 일반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됐다. 약국 앞에 설치된 기기로 약사와 비대면 영상으로 상담하고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용인에 설치된 투약기는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67종을 판매한다. 약물 오남용을 차단하기 위해 환자는 특정 의약품을 선택할 수 없도록 했다.

쓰리알코리아가 화상 투약기를 개발한 것은 2012년이다. 이듬해 인천의 한 약국에서 시범 운영했지만 약사법상 의약품 대면 판매 규정에 위배된다는 유권해석과 약사회의 반대에 부닥쳐 2개월 만에 철거했다. 2016년에는 보건복지부가 화상 투약기를 합법화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20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화상 투약기는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사업으로 선정돼 상용화 기회를 잡는 듯했다. 사전심의를 통해 투약기 시범설치 대수와 판매의약품 품목 등이 확정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심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제10차 심의위원회 안건 상정이 예고됐다가 하루 전에 취소되기도 했다.

약사 출신인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2년 넘게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며 인내했지만 심의위에 상정조차 하지 않고 '희망고문'을 하는 상황에서 규제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약사회는 화상 투약기를 두고 의약품 오남용이나 기기 결함 가능성, 의약품 변질 및 약화사고 우려, 법률 위반 등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동안 복지부는 화상 투약기가 약사법 제50조 제1항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위배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박 대표는 “화상 투약기에 의한 판매는 환자가 복약 지도를 받은 장소, 약품을 수령하는 장소가 약국이므로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법률 자문을 거쳤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단지 약사의 복약 지도가 원격에서 영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약국 현장 판매와 다른 점”이라면서 “코로나19 발생 이후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고 비대면 복약지도와 조제약 택배까지 논의되는 시점에서 약사법 입법 취지도 유연하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쓰리알코리아는 서울 강남구·마포구 등지로 투약기를 확대해 내년 초까지 수도권 일원에 100여대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심야나 공휴일에 가벼운 증상으로 약을 구하지 못해 고통을 겪거나 응급실을 찾는 불편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

약사회 반발이 변수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화상 투약기는 이미 정부가 약사법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한 사안”이라면서 “환자와의 대면 원칙을 훼손하고 무모한 원격의료와 기업의 의료영리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서비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된 바가 없어 현재로선 약사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