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머지런과 사용자 예치금

(사진=전자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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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상품권 이후 처음 보는 파격이었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와인, 심지어 양주까지 사는데 아주 쏠쏠하더라. 처음 듣는 생소한 브랜드지만 알 만한 제휴 브랜드 사용처가 많아서 안심이었다.

머지포인트 피해자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낯선 브랜드지만 20% 안팎의 높은 할인율에 혹해 머지포인트 선불권을 구매했다. 실제로 써 보니 안심이 돼 점차 구매액이 수십만원, 수백만원, 더 나아가 1000만원 훌쩍 넘는 수준이 됐다고 한다. 아이들 간식을 저렴하게 사 주려고 아르바이트하면서 먹는 편의점 도시락을 싸게 사려고 구매한 머지포인트는 즐거운 연휴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머지포인트는 신용이 신용을 쌓은 대표적인 사례다. 경영진은 속일 의도가 없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용자 충전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폰지 사기가 된다. 고객 돈을 예치하지 않고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선불업자 사용자 예치금 보호 문제는 꾸준히 금융당국과 전문가들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해 독일 1위 핀테크 기업이자 상장사인 와이어카드가 약 4조원 규모의 회계부정 사태를 일으키면서 국내 선불전자지급업자의 고객 충전금 분리·예치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국정감사 질의가 나오기도 했다. 와이어카드처럼 빅테크라도 유사한 사건·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통상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은 만기일에 원금을 지급하는 예·적금 등에 가입할 때 예금자보호법상 일정 한도까지 보호한다고 설명해 준다. 개인은 안전한 저축은행을 고르기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비율도 따져 본다.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선불충전 서비스를 깐깐하게 고르는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사용자가 얼마나 있을까. 심지어 예금자보호법처럼 사용자 예치금을 보호하는 등 제대로 된 법적 장치도 아직 없다. 머지포인트가 설령 전자금융업 등록업체라도 회계분식 등 뱅크런을 일으킬 만한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자 예치금을 보호하고 되돌려줄 울타리는 없다.

예전부터 금융권 관계자들은 예치금 보호의무 규정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결국 대형 사고가 나야 가능한 것이냐며 씁쓸해 했다. 머지포인트가 던진 숙제를 더는 미루면 안 된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