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게임 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됐지만 완전 폐지는 아니다. 선택적 셧다운제로 불리는 시간 선택제가 셧다운제 명맥을 이어간다. 시간 선택제가 강제 셧다운에 비해 낮은 단계 구속력을 지녔으나 법률로 게임 이용을 옭아매는 근거가 남아 있는 것은 여전하다. 셧다운제로 촉발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다. 중장기적으로는 선택적 셧다운제까지 폐지하거나 법령이 아닌 자율규제 형식의 대안을 추가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택적 셧다운제' 개선안 찾아야
강제적 셧다운제는 여성가족부가 주무 부처다. 대한민국 만 16세 미만 청소년 모두에게 적용된다.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한다. 시간 선택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무 부처다. 18세 미만 청소년과 보호자가 원하는 시간대를 지정해 막는다. 게임산업법에 근거한다.
현 제도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기본 적용하되 연매출 300억원 또는 직원 300명이 넘는 게임사는 시간 선택제를 동시에 운용하도록 한다. 시간 선택제가 적용되지 않는 대상은 중소기업 게임이거나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싱글플레이 전용게임 혹은 고전 게임일 경우다. 사실상 현재 청소년이 즐기는 모든 PC 게임은 선택적 셧다운제 영향 아래 있다.
게임사는 강제적 셧다운제가 없어지더라도 선택적 셧다운제 운영을 위해 기존 시스템을 남겨 둬야 한다. 회원가입 시 가입자 실명과 연령 확인, 법정대리인 확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결제 정보 고지와 연령등급 등 기존 정보 제공 시스템과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
강제적 셧다운제와 시간 선택제 모두를 운용하고 있는 국내 게임사와 일부 해외 게임사는 제도 개편 이후에도 현 시스템에서 조직과 인력을 변화없이 유지할 방침이다.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이 국내법에 맞춰 셧다운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부담은 그대로다. 셧다운제 폐지 논의를 다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 '마인크래프트 사태' 같은 일이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대안으로 선택적 셧다운제 제공방식을 게임사가 지정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제시된다. 청소년 혹은 부모가 게임 이용시간을 조정한다는 핵심은 남겨두되 실행 방법은 게임사 재량에 맡기는 형식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인 해외 표준과 맞지 않는 국내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실제 소니, MS, 닌텐도 등은 '자녀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글로벌 공통적용 사항이기 때문에 한국에도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부모 교육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문체부도 시간 선택제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 상충하지 않는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문제 본질은 여전하고 게임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청소년 보호방안으로서 취지는 살리면서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물 정보제공 고도화, 청소년 자율권 보장도 숙제
게임물 정보 제공 방법 고도화도 과제다. 시간 선택제를 이용하려면 자녀가 이용하는 게임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는데 부모가 게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문화재단 게임이용확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홍보 부족으로 인식이 낮다. 서비스 이용시 아이핀 인증을 요구하는 등 접근성도 떨어진다. 외국인은 제한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어 다문화가정은 더욱 접근하기 힘들다.
정보를 어떤 기준으로 어떤 범위까지 제공해야 하는지도 명확히 정해야 한다. 정부가 부모 게임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다고는 하나 형식적인 가이드라인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게임을 잘 모르는 부모가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세부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
청소년 자기선택권 침해도 일부 남아 있다. 시간 선택제는 법정 대리인이 설정하고 나면 자녀가 변경할 수 없다. 보호자와 청소년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 보호자 권리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사유로 게임 이용 시간이 제한됐을 때 청소년이 부당함을 제기하고 이를 검토할 통로가 없다.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목적이 청소년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 존중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업계 “대표 규제 철폐 환영하지만…”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로 게임업계는 또 다른 고민을 안게 됐다. 확률형 아이템과 유해광고 차단이다.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업계는 이용자, 정부, 국회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효과와 성능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확률형 아이템 획득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입법화를 추진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영업정지, 등록취소, 폐쇄 조치 등을 부과한다. 확률형 아이템이 막연한 기대심리에 기대 청소년 과소비를 유발하고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확률형 아이템은 한국게임산업협회 주도로 업계가 자율규제하는 방식이다. 랜덤박스에서 뽑는 아이템의 획득 확률 정보가 공개되지만 낮은 확률, 공표 확률 진실성 등 문제를 야기했다.업계는 자율규제 방식을 개선해 대응하기를 원한다. 한층 강화된 자율규제가 연말 시행 예정이다.
그러나 셧다운제 폐지 결정으로 확률형 아이템 정보 의무 표시가 이용자 안전장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업계 반대 명분이 약해졌다. 확률형 아이템이 PC게임에만 적용됐던 셧다운제와 다르게 게임사 주요 매출원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유해광고 제한은 청소년의 유해 게임 접근을 막으려는 의도다. 사실 국내 게임사와 큰 상관이 없다. 일부 중국회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주 사용하는 광고 방식이다. 게임과 상관없는 선정적인 내용을 내세워 마케팅한다. 게임 '왕이 되는 자'가 국내에서 성공한 이후 중국게임 마케팅 문법이 됐다.
현행 게임법상 게임 광고는 선정성이 있어도 관련 기관에서 사전에 제재할 근거가 없다. 광고 배포, 게시 후 인지하더라도 법령상 해당 광고가 실제 게임 내용, 등급과 다를 경우 경품 제공 등 사행심을 조장하는 내용에 한해서만 제재할 수 있다. 사전 심리는 매체별, 업종별로 민간심의기구에서 이뤄진다. 심의 기준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게임 분야에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게임광고자율규제위원회를 발족해 자율심의 운영과 기준 방법을 만들고 있으나 해외 게임사에 적용할 뾰족한 수가 없다. 문체부가 추진하는 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국내 게임사 심의 부담만 키울 가능성이 제기된다.
게임업계는 일단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PC게임 시장이 성인 게임물 위주로 재편되고 모바일 게임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직접적인 수혜는 없지만 10년 만에 '게임=악'으로 묶던 프레임이 한 꺼풀 벗겨진 데 만족한다. 2년 마다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셧다운제 대상 테스트를 받는 불안감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까지 표출된다.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을 규제하던 대표 정책이 사라진 것에 일단 환영한다”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강제적 셧다운제, 선택적 셧다운제를 일거에 폐지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추후 확률형아이템 정보 표시 의무 등을 포함해 산업 성장과 이용자 보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