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마련한 20대 대통령선거 정책제안집은 '혁신강국'이 키워드다. 단기 차원의 업계 당면 문제보다는 중장기로 국가 혁신경쟁력을 확충하기 위한 근원 해결책에 무게를 뒀다.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혁신강국'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혁단협은 어느 정파에도 관계없이 부강하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철칙·원칙으로 '자유' '개방' '공정' '상생' 네 가지를 내걸었다. 이를 기반으로 72가지 세부 혁신 실천과제를 제안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재정비도 강력하게 요구했다. 정부가 '신기술 놀이터'로 만들겠다며 야심 차게 추진했지만 현장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혁단협은 우선 4개 부처에서 개별 접수하고 있는 규제접수 창구를 일원화해서 집행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실증특례 시간은 현행 '2+2년'에서 '6+6개월'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간의 실증특례를 시행하면서 발행하는 담당 공무원 교체 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 외에 20년 넘게 규제에 묶여서 시범사업만 허용되는 원격의료의 규제 개선 방안, 데이터 산업 진흥을 저해하는 법규정 개선,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한 단계적 네거티브 제도 도입 요청 등도 요구했다.
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16일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혁신강국'은 글로벌 혁신 전쟁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비전이자 전략”이라면서 “'혁신강국'이란 혁신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제도·문화적 시스템을 갖추고, 각 사회 분야에서 도전과 성취를 자발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기업가정신이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과제 가운데 규제개선 과제는 20여개에 이른다. 차기 정부에 더 적극적인 규제 혁파를 요구한 것이다. 글로벌 혁신기업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미래 시장을 빠르게 선점해 가고 있는데 반해 국내 산업은 수십 년 묵은 규제에 발이 묶여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신산업 규제로 △원격의료 △데이터경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핀테크 등 분야의 핀셋규제 개선을 요구했다. 20년 넘게 규제에 묶여 제한적 시범사업만 허용되고 있는 원격의료 분야에서는 적극적 시범사업 도입과 확대를 요구했다. 의약품 원격조제 도입을 위한 규제특구 신설, 디지털치료제 등 '소프트웨어(SW) 기반 의료기기'(SaMD)의 수가화도 함께 제안했다. 혁신 제품의 수가화로 제도권에 편입시킴으로써 다양한 디지털헬스 서비스와 제품 출현을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산업의 진흥을 저해하는 법·규정 개선도 요구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개인정보, 가명정보, 익명정보의 정의와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시 '전체 매출액의 3% 이하'로 과징금 기준을 상향해 벤처기업의 부담이 높아졌다”면서 “중소기업의 매출 영업이익률이 2~3%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데이터산업 전반을 위축시킬 정도로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민간 주도 개방형 '혁신거래소' 설립 제안도 눈에 띈다. 이는 벤처기업과 대기업·중견기업 간 기술거래, 인수합병(M&A) 등 협력을 활성화되기 위한 접근이다. 혁신거래소는 상장기업에 벤처기업 신기술을 수혈할 수 있도록 하고, 벤처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시장을 확보토록 중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혁단협은 전국에 설치돼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혁신거래소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강삼권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혁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돼야 한다”면서 “정책 제안이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맞아 대한민국이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도국가로 떠오를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