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칸과 아카데미 영화제를 석권한 데 이어 올해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1980년대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사연을 그린 영화 '미나리'가 명성을 떨쳤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가감 없이 연기한 윤여정 배우가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일이다. 세계적으로 주연 못지않은 조연, 진정 '장면을 훔치는 사람'(Scene stealer)으로서 한국 영화사의 주연으로 우뚝 선 74세의 배우를 보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주연배우가 영화 속에서 극의 큰 줄기를 이끌어 가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이라면 주연을 빛나게 하면서 영화 완성도를 한층 높이는 조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산업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선도하는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산업 등이 주연을 맡고 있다면 전기산업과 같은 후방산업은 '신 스틸러'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올해 세제개편안은 반도체, 배터리, 백신 등 주연급 산업만 '핀셋 지원'하는 정책이어서 안타깝다.
주연급 산업 성과 창출을 위해서는 조연급 연관 산업의 동반성장이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탄소중립 기술의 핵심이자 배터리 등 3대 국가전략기술 조연인 전기산업 기술에 대한 지원 역시 검토돼야 할 것이다. 신성장·원천기술 투자에 탄소중립을 포함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이 분야에서 선진국에 뒤처져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더욱 공격적인 지원 정책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최종 에너지믹스로 에너지 총공급에서 3분의 2를 재생에너지가 담당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 공급의 간헐성과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시장조사기관 QY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은 지난해 46억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26.9% 성장해 오는 2026년 24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가 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배터리뿐만 아니라 에너지 저장에 필수적인 전력변환장치(PCS; Power Conversion System), 에너지 효율화를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SW)인 에너지관리시스템(EMS; Energy Management System), 재생에너지로 발전된 직류(DC) 전기를 교류(AC)로 변환할 필요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DC 전력기기에 이르기까지 주변 핵심 기술을 포함하는 지원책이 강구돼야 한다.
친환경 절연 소재 기반 전력기기 개발, 전동기 효율 향상 등 탄소 저감형 핵심 전기기술을 발굴·육성하는 전기산업계의 연구개발(R&D) 추진전략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탄소저감형 친환경 절연소재를 사용하는 전력기기가 개발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130만톤 감축할 수 있으며, 2050년에는 완전 감축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동기 효율 향상 설계 및 제조기술을 확보하면 전력사용량 절감 기준 총 783만톤이 넘는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이같이 전기산업계가 국가 기반시설인 전력인프라를 보호하고 전력 효율성을 향상시켜서 에너지 절감, 탄소중립에 크게 기여할 친환경 기술 육성에 매진하는 만큼 탄소중립 세제 개편안을 포함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독일의 '첨단기술전략 2020' 5대 핵심 기술개발 분야에 이산화탄소 저감 및 에너지효율화, 지능형 에너지 공급시스템, 신재생에너지 등 기후·에너지 분야가 대거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조연들의 소금 같은 역할에 힘입어 빛나는 스타인 주연이 탄생하는 해피엔딩이 이 영화의 결말이 되길 기원한다.
구자균 한국전기산업진흥회 회장 jkkoo@koem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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